김 주 원
국립농업과학원 운영지원과장


옛 선인들은 청년 시절 관직에 나아가 이름을 떨치고 노년에는 자연과 유유자적하며 후진을 양성하기를 열망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젊은 시절에는 도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후 노년에는 안정된 삶 속에서 생계수단이 아닌 소일거리로 텃밭을 일구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텃밭’이 정말 소일거리로만 머무르는 것이냐 하면 단연코 ‘No’라고 할 수 있다. 텃밭은 노년에 단순한 소일거리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물이 커가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과 열매를 맺어 수확했을 경우 작은 성취감을 준다. 또한 노년의 상실감을 잊게 해주는 위로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작은 텃밭을 가꾸기 위해 소모한 노동력은 활동저하로 오는 많은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텃밭은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든, 가장 안전한 반찬거리를 제공하는 슈퍼마켓의 역할을 한다. 우리 가족이 텃밭에서 수확하는 각종 채소는 밥상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고구마 하나, 상추 한 잎을 먹을 때마다 어떻게 거름을 주고 씨를 뿌렸으며 잡초를 뽑고 수확했는지 추억한다면 그 밥상은 진수성찬과 다를 바 없다. 따뜻한 밥과 텃밭에서 가꾼 싱싱한 채소, 밥상 앞에서 꽃 피는 텃밭 이야기라면 가족 간의 정도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또한 텃밭에서 나온 채소는 농사지은 본인도 먹고, 자식들에게도 주고, 이웃과도 나눠 먹게 된다. 별 거 아닌 상추 한 포기, 가지 서너 개지만 이게 바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한다.

텃밭은 또한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요즘 아이들의 훌륭한 생태 교육장이다. 아이들과 잠자리, 메뚜기, 매미 등을 잡으러 간 경험이 있는가? 잠자리 등을 잡아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을 때 아이의 표정을 본 적 있는가?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경험이 될 것이며, 아버지나 또는 할아버지로서는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그 어떤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텃밭은 귀농 희망자가 귀농 전 생활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귀농 후 직업으로서 하게 되는 농사일은 텃밭 기르는 일과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수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조금이나마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텃밭이다.

만약 일거리가 없어 상심한 아버지나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들에게 텃밭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좋다. 텃밭은 이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으로 인해 잡념은 사라지고, 잠시나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시 한 번 충전하여 취업에 도전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미래에 기후변화,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위기가 닥쳤을 때, 텃밭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베를린, 도쿄와 같은 대도시는 식량 공급이 끊기면 단 72시간 만에 비축해 둔 식량 모두가 바닥이 난다고 한다. 이미 한 차례 식량 부족을 겪었던 쿠바의 아바나는 주차장을 갈아엎고 공터를 텃밭으로 일궈 이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텃밭은 훌륭한 해결책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훌륭하게 가꾼 텃밭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손자에게 물려준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텃밭의 흙 한 줌에 우리 할아버지의 땀이 스며있고, 텃밭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시간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야 말로 텃밭의 역사는 흙에 아로새긴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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