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비자로 외국에 가있는 딸에게 택배를 보내게 됐습니다. 딸애가 예전에 집에서 맛나게 먹던 밑반찬들입니다. 딸애는 지금 3년째 남의나라 물을 먹고 있는 중인데 참다가 참다가 일 년에 한번은 제 나라 것을 먹고 싶은가 봅니다. 그 나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 있는 탓에 웬만한 도시엔 한인 타운이 있어 우리나라 식 재료나 반찬을 사는데 어려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즈 엄마가 만든 것을 먹어야 허기가 조금 가라앉나 봅니다.

그렇기도 해도 저는 직접 항공택배(이 말이 맞는지 모르겠군요)를 보내 보지는 못하고 서울에 있는 딸이 대신하므로 우선 서울로 물건을 보냅니다. 그러면 반찬들은 따로 진공포장을 해서 보내야 된다는군요. 보내는 항공료도 만만찮은 모양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곳에서 구입해서 쓸 법도 한데 그 나라는 물가가 워낙 비싸서 항공료를 포함하더라도 소용되는 물건들을 여기서 구해 보내는 게 낫다고 합니다. 그 물건 중에 하나가 주방에서나 청소할 때 쓰는 매직 뭐라나 하는 건데 그것도 거기서는 비싸서 못 사 쓴다는군요.
딸애가 먹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파래장아찌랍니다. 파래는 이른 봄 바닷가 바위에 붙어 자라는 나물인데 파래 중에서도 실 파래란 것을 뜯어다가 액젓에 담가 놓으면 여름반찬으로 썩 괜찮은 거지요. 예전 어머니들은 액젓 대신 잘 삭은 젓갈 속에 넣어두었다가 여름이면 꺼내서 고춧가루 마늘다짐 통깨 참기름을 넣고 조물 거려서 상에 올립니다. 그러면 짭조름하고 고소한 그 맛이 참 개운하게 밥맛을 돋웁니다. 저도 가능하면 해마다 빼지 않고 그것을 마련해두었다가 여름나기 반찬으로 씁니다.

그 먼 이역 땅에서 딸애가 그걸 먹고 싶다니, 입맛 다시며 음식에 대한 향수를 키우고 있을 애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제게 빙의가 돼 하루하루가 괴롭군요. 하여 주말에 전화를 받고는 월요일인 어제는 부랴부랴 택배를 쌌습니다. 보내달라는 파래장아찌는 두 봉지를 쌌는데 그거면 가끔 한 번씩 먹는다 쳐도 반년은 너끈할 겁니다. 사실 맛있는 반찬이라는 것도 생각나서 입맛 당길 때 한두 번이지 줄곧 그것만 먹을 순 없는 것이지요. 몇 끼 먹어서 성에 차고 입에 무르면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나는 법입니다. 나머지는 마늘종과 깻잎. 머위니 엄나무 순이니 하는 장아찌도 있지만 그것은 애가 먹어보지 않았던 것이라 음식 가림을 많이 하는 애에게는 맞지 않을 듯해서 가장 익숙한 두 가지만을 더 쌉니다. 마늘종은 올해 것이어서 무르지도 짜지도 않게 싱싱한 맛이었고 깻잎은 올해 것은 아직 담글 때가 아니니 작년 것인데 그것도 노랗게 향이 살아 있어서 좋습니다. 물 말은 밥에 올려서 먹으면 제격이겠죠? 제 생각엔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조목조목 적어서 보냈으면 좋겠는데 유난떤다고 안식구에게 야단 맞을까봐 그만 뒀습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서울에 있는 애들한테 택배를 보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생활이 어찌 보면 애들 위해서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말이지요. 밭에서 무엇이 됐던 나올 때마다 보내주고 반찬들은 일 년 열두 달 사시사철 챙겨줍니다. 시골에는 달랑 두 내외만 있으므로 무엇이 됐던 해놓으면 어디로 퍼내지 않는 한 없어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해 늙은이 둘만 먹으려면 귀찮게 뭘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애들을 생각하면 그리 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결혼해서 자기 살림 한다고 해서 그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물론 번듯한 직장에 넓은 집에 차가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시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민들이라면 지금과 같은 이런 문화는 달라질 것 같지 않군요. 아들딸들이 부모의 자장력 안에 아직  들어있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유대관계의 긍정적 면이 작동해야 성립되는 것인데 만일 제가 늙어서 스스로 주체궂다 싶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과는 반대로 애들한테 의존해야 되는 관계로 되면 어쩌냐는 것이지요. 특히 애들이 지금보다도 더 형편이 나아질 전망 없다할 때요. 생각할수록 오싹하지요?

며칠 전에 그새 머리가 더부룩하니 길어서 읍에 나간 김에 미장원엘 들렸습니다. 싼 맛에, 그리고 부드러운 여자의 손길이 좋흡흡!


워킹홀리데이비자로 외국에 가있는 딸에게 택배를 보내게 됐습니다. 딸애가 예전에 집에서 맛나게 먹던 밑반찬들입니다. 딸애는 지금 3년째 남의나라 물을 먹고 있는 중인데 참다가 참다가 일 년에 한번은 제 나라 것을 먹고 싶은가 봅니다. 그 나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 있는 탓에 웬만한 도시엔 한인 타운이 있어 우리나라 식 재료나 반찬을 사는데 어려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즈 엄마가 만든 것을 먹어야 허기가 조금 가라앉나 봅니다.

그렇기도 해도 저는 직접 항공택배(이 말이 맞는지 모르겠군요)를 보내 보지는 못하고 서울에 있는 딸이 대신하므로 우선 서울로 물건을 보냅니다. 그러면 반찬들은 따로 진공포장을 해서 보내야 된다는군요. 보내는 항공료도 만만찮은 모양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곳에서 구입해서 쓸 법도 한데 그 나라는 물가가 워낙 비싸서 항공료를 포함하더라도 소용되는 물건들을 여기서 구해 보내는 게 낫다고 합니다. 그 물건 중에 하나가 주방에서나 청소할 때 쓰는 매직 뭐라나 하는 건데 그것도 거기서는 비싸서 못 사 쓴다는군요.
딸애가 먹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파래장아찌랍니다.

 파래는 이른 봄 바닷가 바위에 붙어 자라는 나물인데 파래 중에서도 실 파래란 것을 뜯어다가 액젓에 담가 놓으면 여름반찬으로 썩 괜찮은 거지요. 예전 어머니들은 액젓 대신 잘 삭은 젓갈 속에 넣어두었다가 여름이면 꺼내서 고춧가루 마늘다짐 통깨 참기름을 넣고 조물 거려서 상에 올립니다. 그러면 짭조름하고 고소한 그 맛이 참 개운하게 밥맛을 돋웁니다. 저도 가능하면 해마다 빼지 않고 그것을 마련해두었다가 여름나기 반찬으로 씁니다.

그 먼 이역 땅에서 딸애가 그걸 먹고 싶다니, 입맛 다시며 음식에 대한 향수를 키우고 있을 애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제게 빙의가 돼 하루하루가 괴롭군요. 하여 주말에 전화를 받고는 월요일인 어제는 부랴부랴 택배를 쌌습니다. 보내달라는 파래장아찌는 두 봉지를 쌌는데 그거면 가끔 한 번씩 먹는다 쳐도 반년은 너끈할 겁니다. 사실 맛있는 반찬이라는 것도 생각나서 입맛 당길 때 한두 번이지 줄곧 그것만 먹을 순 없는 것이지요. 몇 끼 먹어서 성에 차고 입에 무르면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나는 법입니다. 나머지는 마늘종과 깻잎. 머위니 엄나무 순이니 하는 장아찌도 있지만 그것은 애가 먹어보지 않았던 것이라 음식 가림을 많이 하는 애에게는 맞지 않을 듯해서 가장 익숙한 두 가지만을 더 쌉니다. 마늘종은 올해 것이어서 무르지도 짜지도 않게 싱싱한 맛이었고 깻잎은 올해 것은 아직 담글 때가 아니니 작년 것인데 그것도 노랗게 향이 살아 있어서 좋습니다. 물 말은 밥에 올려서 먹으면 제격이겠죠? 제 생각엔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조목조목 적어서 보냈으면 좋겠는데 유난떤다고 안식구에게 야단 맞을까봐 그만 뒀습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서울에 있는 애들한테 택배를 보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생활이 어찌 보면 애들 위해서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말이지요. 밭에서 무엇이 됐던 나올 때마다 보내주고 반찬들은 일 년 열두 달 사시사철 챙겨줍니다. 시골에는 달랑 두 내외만 있으므로 무엇이 됐던 해놓으면 어디로 퍼내지 않는 한 없어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해 늙은이 둘만 먹으려면 귀찮게 뭘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애들을 생각하면 그리 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결혼해서 자기 살림 한다고 해서 그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요. 물론 번듯한 직장에 넓은 집에 차가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시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민들이라면 지금과 같은 이런 문화는 달라질 것 같지 않군요. 아들딸들이 부모의 자장력 안에 아직  들어있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유대관계의 긍정적 면이 작동해야 성립되는 것인데 만일 제가 늙어서 스스로 주체궂다 싶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과는 반대로 애들한테 의존해야 되는 관계로 되면 어쩌냐는 것이지요. 특히 애들이 지금보다도 더 형편이 나아질 전망 없다할 때요. 생각할수록 오싹하지요?

며칠 전에 그새 머리가 더부룩하니 길어서 읍에 나간 김에 미장원엘 들렸습니다. 싼 맛에, 그리고 부드러운 여자의 손길이 좋아서, 또 여자들의 수다도 들을만해서 자주 가는 미장원인데 의자에 빼곡 앉아서 수다 떨던 아줌마들이 남자 손님이 왔답시고 하나둘 자리를 떠서 미장원엔 서너 명의 사람만 있었습니다. 그날의 화제는 좀 예외였는데 원장의 친정어머니가 같은 읍내에 홀로 사시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든한 살이시라는데 딸이 가서 밥을 한 번씩 해 놓으면 그것만 자시고는 언제까지나 밥을 하지 않는다는군요.

그러면서 지금부터 딸만 쳐다보고 있으니 어쩌야하냐고 잔뜩 불만스러운 이야기들만 늘어놓았습니다. 좀 빼고 듣기는 하지만 그동안 자기 입으로 한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미장원 원장은 외국에 아들이 의사로 나가있고 땅값 좋은 관광지에 땅이 몇 천 평 있고 현재 미장원 2층 건물도 자기 것이어서 먹고 살기에 결코 걱정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뿐 입에서 그런 불만의 소리만 나오니 조금 거시기 하더군요. 흠 흠!아서, 또 여자들의 수다도 들을만해서 자주 가는 미장원인데 의자에 빼곡 앉아서 수다 떨던 아줌마들이 남자 손님이 왔답시고 하나둘 자리를 떠서 미장원엔 서너 명의 사람만 있었습니다. 그날의 화제는 좀 예외였는데 원장의 친정어머니가 같은 읍내에 홀로 사시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든한 살이시라는데 딸이 가서 밥을 한 번씩 해 놓으면 그것만 자시고는 언제까지나 밥을 하지 않는다는군요.
그러면서 지금부터 딸만 쳐다보고 있으니 어쩌야하냐고 잔뜩 불만스러운 이야기들만 늘어놓았습니다. 좀 빼고 듣기는 하지만 그동안 자기 입으로 한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미장원 원장은 외국에 아들이 의사로 나가있고 땅값 좋은 관광지에 땅이 몇 천 평 있고 현재 미장원 2층 건물도 자기 것이어서 먹고 살기에 결코 걱정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뿐 입에서 그런 불만의 소리만 나오니 조금 거시기 하더군요. 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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