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
국립산림과학원 특용자원연구과장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 된 가공음료, 술. ‘술은 어른께 배워야 한다’, ‘어른 앞에서는 고개를 돌려 술을 마신다’ 등 술 마시는 방법과 예절을 가르칠 만큼 우리나라에서 사회생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고, 술자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연간 알코올 소비량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 평균의 2배에 달한다고 한다. 과도한 음주와 술자리로 인한 고지혈증에 비만, 간암까지 술과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간암은 우리나라 중년의 가장들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병이다. 간염이 간암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알코올이 간을 손상시켜 이것이 간암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니, 간 건강이야 말로 우리 생존에 직결된다 하겠다.
술 마신 다음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숙취해소’, ‘숙취에 좋은 식품’ 등을 검색하면 ‘헛개즙’, ‘헛개환’, ‘헛개수’, ‘헛개차’와 같은 ‘헛개’라는 이름이 뜬다. TV 광고를 봐도 직장인들이 회식 후에 마시는 것이 ‘헛개OO’이라는 음료이니, 헛개를 직접 본 사람은 적어도, 헛개가 간 해독과 숙취 해소에 효능이 좋다는 것은 다들 인식하고 있다.
헛개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 벌나무, 봉목, 지구자나무로 불리는 우리나라 특산수종(樹種)이다. 키는 보통 10~15m가량으로, 6월 중순에서~7월 상순 사이에 황록색 꽃을 피운다. 꽃이 진 후, 열매자루(과병, 果柄)는 점차 커서 10월 하순경에 짙은 갈색의 울퉁불퉁한 육질이 되는데, 그 맛이 달콤해 생으로도 먹을 수 있다. 수확된 열매자루는 며칠간 건조시켜 냉장보관하면서 이용한다. 열매자루에는 간 독성 해소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으며, 이 물질은 열매자루가 성숙하는 10월에 형성돼 약리적 효능이 나타난다.
헛개나무는 간 기능 개선 및 해독 작용이 우수하며, 간염 치료 효과가 뛰어나 2009년 열매자루 추출물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기능성식품원료로 인증을 받고 다양한 가공식품이 상품화돼 판매되고 있다.
헛 개나무 약리효과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일부 양묘상들이 값싼 중국산 헛개나무를 재배하거나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다. 중국산은 국내산에 비해 품질 및 약리적 효능이 많이 떨어지고 추위에 약해 동해로 농가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산 헛개나무는 품질이 우수하고 추위와 병충해에도 강해 전국적으로 재배가 가능한 임산물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1998년부터 헛개나무 육종을 시작해서 전국 10개 지역에서 열매자루 생산이 많은 64그루의 우수한 나무를 골라내 2014년까지 안정성 검정을 실시했다. 선발된 나무 중에서 국내산 일반 헛개나무보다 열매자루 생산량이 2.0~3.9배 이상 많은 ‘풍성1호’, ‘풍성2호’, ‘풍성3호’에 이어 최근에는 ‘선산’까지 4개의 신품종을 개발했다.
헛개나무는 식용ㆍ약용 식물자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밀원수종(꿀벌이 꿀과 화분을 수집하는 나무종류)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이 나무는 줄어든 아까시나무의 벌꿀생산량을 보완시킬 수 있는 대체 소득품목으로도 우수하다. 특히 헛개나무 신품종은 개화량과 화밀(花蜜, 일명 ‘꽃꿀’로도 불림) 분비량이 많아 국내 주요 밀원수종인 아까시나무보다 많은 벌꿀 생산을 기대할 수 있다.
헛개나무 벌꿀은 세계적 약용 꿀인 ‘마누카’보다 항산화 활성, 미백효과, 요산 생성 억제효과 등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았다.
국 립산림과학원은 헛개나무로부터 인간의 건강 증진을 위한 유용물질 및 약리활성을 밝혀내고, 유용물질의 산업화에 응용할 수 있는 분리 정제 방법을 개발했다. 헛개나무를 이용해 간 기능을 개선하고 숙취 해소에 효과가 있는 식용ㆍ약용 물질을 찾은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생 자원식물을 이용한 새로운 품종 육성과 재배기술 개발은 세계시장의 변화와 개방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농·산촌에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소득원을 개발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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