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문 섭
국립산림과학원 특용자원연구과 연구원


가을의 끝자락 11월, 찬바람 스며드는 입동을 지나 겨울의 문턱으로 접어든다. 가을과 겨울을 오가는 날씨 탓에 신체적, 심리적 피로는 더해지고 면역력도 떨어져 감기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으슬으슬한 몸살기운과 칼칼한 목아픔에 사람들이 찾는 것이 바로 배를 이용한 음료와 차다.

도라지나 생강, 대추와 배를 함께 달여 마시며 감기를 다스렸던 우리의 조상들의 지혜처럼 배는 목감기뿐만 아니라 숙취해소, 고혈압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꽃이 과수원에 만발할 무렵이면,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조년의 시조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가 떠오른다.

하얀 달빛 아래 더욱 흰빛을 뽐내는 배꽃이 주는 정취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오 늘날 우리가 널리 식용하고 있는 여러 배 재배종은 야생 돌배나무류 가운데 인간에게 유용하며 맛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개량(육종)한 것으로,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하는 것은 산돌배(Pyrus ussuriensis Maxim.)와 돌배나무(P. pyrifolia Nakai)다.

산돌배 열매는 8월 말에서 9월 초에 노랗게 익으며 석세포가 적은 것이 특징이고, 돌배나무 열매는 10월 이후에 갈색으로 익는데 보통 첫서리 이후 수확을 하며 아무래도 석세포가 많아 생과로 먹기에는 맛이 없어 약용으로 사용하거나 과실주를 담그는 데 쓴다. 우리가 배를 먹을 때 모래 알갱이 같이 꺼슬거리는 것이 바로 석세포다.

석세포가 많은 배는 식감과 당도 등이 떨어진다고 해서 요즘 배 농가에서는 석세포를 억제시킨 배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석세포가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배 먹고 이 닦기’라는 속담처럼 배를 먹으면 석세포가 양치질과 같은 효과를 주어 치석을 제거하는 등 구강 건강에 도움을 준다.

우리 조상들은 소금으로 이를 닦기 훨씬 전부터 배로 양치질을 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필자는 어느 정도의 석세포는 재미있는 식감을 주기도 하고, 치아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 인위적으로 없앨 필요는 없다고 본다.

돌배나무류 열매는 예로부터 기관지 질환 및 혈압 조절에 효과가 높아 식용ㆍ약용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최근 연구 결과에서는 일반 재배종에 비해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는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며, 심장병, 고혈압 및 골다공증에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소화효소 작용도 뛰어나 지금도 민간에서는 소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배를 먹는다. 이것이 돌배나무류에 대한 기능성 및 의약품 시장에서의 고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는 이유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소득창출이 가능한 나무로 유망한 돌배나무류의 신품종을 육성하기 위해 2004년부터 열매 형질이 우수한 나무들을 선발하였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재배 안정성 검정을 실시하고 우수한 나무 중 혈압 조절 효과, 항산화 효과 및 피부 미백에 좋은 물질인 알부틴(Arbutin)이 많이 함유된 개체를 최종 선발하여 산돌배 ‘산향’과 돌배나무 ‘석향’ 및 ‘수향’을 신품종으로 육성하였다.

‘산향’은 과실의 전면 과피색이 노란색을 띤 갈색 줄무늬로 아름답고 수확 시기가 8월 초순으로 매우 빠르다. ‘석향’과 ‘수향’은 열매가 크고 대장암과 피부 노화 억제 효능이 있는 클로로겐산 등과 같은 기능성 물질 함량이 높은 품종이다.

최근 들어, 돌배나무는 그 열매뿐만 아니라 뿌리, 수피(나무껍질), 줄기, 잎, 열매껍질 등에서 기능성 물질을 탐색하는 등 다양한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어 새로운 활성을 가진 물질 개발이 기대되는 유망한 나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현재 국립산림과학원 특용자원연구팀에서는 최근 신품종 외에 유용한 기능성 물질이 많이 함유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돌배나무 열매 생산에 대한 친환경적인 재배관리법과 생산물이 소비자에게까지 안전하게 제공될 수 있는 수확 후 관리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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