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농업대학 화훼과를 졸업한 최선미(23세), 이재민(31세) 씨 부부는 결혼한지 1년만에 국화하우스 2동, 포도 과수원 4957㎡(1천5백평), 오이밭 3966㎡(1천2백평)을 일궜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웃는 최 씨 부부.

다정하게 포도 가지 치는 모습을 보니 부부라기 보다는 다정한 오누이같다.
“세계로 가는 농업 이끌 것”이라는 최 씨 부부는 겸손한 말투와는 달리 포부가 대단하다.

바닷가 소녀, 농촌 아줌마 되다
최선미 씨는 전남 완주군에서 김공장을 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 바닷가만 보고 자란 최 씨가 어떻게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처음부터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예요.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보니 학교가 인문계, 산업계, 농업계로 나눠져 있더라구요. 농업계에 조경학과가 있는 것을 알게됐고 그저 단순하게 꽃과 관련이 있나보다 하고 지원하게됐죠.”
농사와의 인연이 정말 단순하다.

막상 농과에 진학을 했지만 최 씨가 상상하던 농업과는 거리가 먼 것을 느꼈다. 조경학과를 지원하며 예쁜 정원을 꾸미고 여유롭게 꽃을 가꾸며 지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과는 달리 농사일은 고되기만 한 듯이 느껴졌다. 결국 최 씨는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광주에 위치한 송원대학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한 최 씨는 그래도 농업이 그리웠던 것일까? 학교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멋진 요리사를 꿈꾸던 최 씨는 지루한 칼질 연습과 이론수업에 적응을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최 씨는 친구의 권유로 한국농업대학이란 곳을 알게됐다.

“주변에 농사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다 고등학교때의 경험으로 농사는 막연하게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도 농촌생활 자체가 좋아 예전부터 꿈꿨던 화훼과를 선택하게됐어요.”

화훼과에 입학해 학교생활에 적응할 때 쯤인 1학년 2학기 말, 최 씨는 이재민 씨를 만나게 됐다. 이 씨의 끊임없는 구애 끝에 둘은 사귀기 시작했다.

이 씨는 “제가 꿈이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상주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것이었거든요. 이기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선미를 보자마자 선미가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리 봐도 아직 철없는 학생같기만 한 최 씨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니 이래서 ‘천생연분’인가보다.
그러나 만나자마자 이별이라고 했던가? 둘은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실습을 나가게됐고 이 씨가 네덜란드로 실습을 가는 바람에 둘은 떨어지게 됐다.

일년동안 편지와 전화통화를 하며 사랑을 이어오던 둘은 떨어져 있는 동안 더 간절해졌고 졸업을 하자마자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부터 학교를 졸업해 농사를 지으려던 이 씨의 뜻에 따라 최 씨도 이 씨의 본가가 있는 상주로 내려와야만 했다. 포도심고 시설 준비하고 이 씨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해 보여 최 씨는 이 씨의 집에 방을 얻어서 지내며 거들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남편의 확고한 신념과 결심을 보고 믿음이 생기더라구요. 농사일이 힘들어도 같이라면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제가 자청해서 졸업도 하기전에 상주로 내려가 남편 일을 도왔죠. 이왕 내려가서 자리 잡을꺼라면 둘이 함께 합심해서 빨리 적응하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렇게 농사와는 거리가 멀 것같은 어촌 소녀는 점점 농촌의 아줌마가 되갔다.

정신없이 지나간 1년
최 씨 부부는 신혼기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자리를 잡기 시작해 한참 정신없을 무렵에 둘은 결혼식을 올리게 됐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였다고 한다.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오는것이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일이 많았어요. 신혼여행으로 중국에 갔어도 여행 내내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할 일들이 머릿속에 꽉 차 있어 제대로 마음편히 놀지도 못했어요.”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할 무렵 농업기술센터에서 부부가 화훼과를 졸업한 것을 알고, 1천 500만 원의 국화재배 사업을 배정해줬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지만 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당시 상주는 근처 구미에 대규모 화훼단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훼 분야가 활성화돼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 씨 부부는 화훼과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국화는 재배해본적도 없고 겪어본 적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농약치는것, 묘목 구입하는 사소한 것 조차도 어디 물어볼 곳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친분이 있던 구미원예공사의 생산팀장에게 도움을 받게 됐다. 그분을 통해 묘목구입부터 수출 대행까지 고민했던 모든 것이 한번에 해결됐다.

이제 국화 품질에만 신경쓰면 되는 상황. 최 씨의 국화는 상주의 낮은 기온덕에 경매장에서 품질 1등을 기록하게 됐고, 수출업체에서도 최고가를 받는 등 성공을 이어갔다.

이렇게 국화에 매달린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오이 수확이 시작됐다.
오이농사도 역시 초보였던 부부는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

“노지라 햇볕 피할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뙤약볕에서 오이를 따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1년 농사경험 중에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이 수확을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당시 부부는 바쁠땐 하루에 2~3시간씩 자며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국화 판매하고 오이 수확하고 포도밭 가꾸고…. 덕분에 2007년도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미래를 위한 한걸음, 한걸음…
최 씨 부부는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있다. 정말 신혼을 즐길 사이도 없이 한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지만 아쉬움이나 후회는 전혀 없다.

그러나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다고 해서 이 자리에서 안주할 순 없는 법이다.
처음 최 씨 부부는 양액재배시설을 만들기 위해 하우스를 만들었다가 자본문제, 기술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일단 보류한 상태다.
“이제 농업도 기술농업만이 살아남을꺼예요.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 적응하는것이 아닌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줘 최상의 상품을 만들어야지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죠.”

그래서 부부는 미래에 대한 준비 작업으로 상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양액재배는 아니지만 상추양액재배를 시작하기 위해 상추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직은 만만치가 않다.

“우선 판로가 큰 문제예요. 상추는 서울 근교에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 판로를 잡기가 힘들어요. 워낙 생산자가 많다보니 현지에서는 4kg짜리 한 박스에 만 원인데 시중에서는 100g에 천원~천오백원 까지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되면 저희같이 지방의 경우 유통비가 만만치 않게 들죠. 또 상추같은 신선채소는 유통거리가 중요한데 이곳은 서울까지 빨리가야 2시간이 걸리니 유통문제도 해결해야할 사항이죠.”

그래도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직 상추가 다 자라지 않아 판매는 안하고 있지만 올 상추의 품질이 좋아 기대가 많이 된다.
또 포도의 경우 비가림으로 올해 첫 수확을 앞두고 있다. 포도과수원도 전 자동화식 시설로 발전 시킬 계획이다.

초보 농사꾼이 아닌 준비된 농업인
계획이 참 많다는 말에 “계획은 아직두 많아요. 둘다 조경학과를 졸업했으니 전공을 살려보자는 얘기를 늘 해왔어요. 그래서 내년쯤에는 마당에 조금 자리를 마련해 분재용 나무를 키워서 판매해볼 생각이예요. 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땅을 좀 더 마련해야겠죠.”라고 이 씨가 대답했다.

최 씨 부부는 올 해 예상 수익을 1 억원으로 잡았다.
“작년에 3달간의 수입이 2천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국화 하우스도 한동 더 늘었고, 거름을 위해 소도 3마리 정도 키울 예정이고, 포도도 올해 첫 수확을 하게 되요. 포도만 해도 3천만 원 정도 수익이 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작년도 그렇게 힘들었다면서 과연 올해 그 많은 양의 농사를 다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작년에는 그야말로 초보 농사꾼이었죠. 부모님 세대가 하는대로 가을에 한꺼번에 수확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한 고생이죠”라며 “올해는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농업인으로써 자리잡을 계획이예요.”라며 부모님께 당당하게 인정받는 한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최 씨는 올해 국화재배를 하면서 9월에 오이 수확이 끝나면 포도 수확을 시작하고 매일 판매를 해 월급같은 개념으로 수입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이같은 경우 매일 경매장에 내다 팔면 하루에 30~40만원 정도가 들어와요. 포도와 다른 작물들도 이런 식으로 운영할 생각이예요.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 계획을 세우기도 편해지겠죠.”
또 가정생활과 농업을 분리시켜 통장 두 개로 농업수입과 지출을 분리시켜 경영할 계획이다. 역시 젊은 농업인들 답게 경제·경영 관리가 철저하다.

한참 둘의 미래 계획을 세우던 최 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대 5년안에 저 혼자 운영할 수 있는 화원을 하나 차릴까 해요. 아마 아이도 낳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남편이 혼자 일을 할 수 있을때가 되겠죠.”
마주보고 웃는 것을 보니 이미 계획돼 있던 희망인가보다. 작년보다도 더 정신없는 한해가 되겠지만 둘의 웃음을 보니 그 고생마저도 즐거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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