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홍 재
(사)대한양계협회 부회장 육계위원장



양계산업이 좌불안석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이하 AI)로 인해 농가뿐만 아니라 전체 산업 종사자들의 고충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AI로 인해 살처분된 가금류 숫자만도 3천만수를 훌쩍 뛰어넘는다. 과거 AI 최대 피해로 기록됐던 2014년~2015년 517일간 1,937만 마리의 살처분 숫자와 비교가 안될 정도다. 정부가 AI 조기 종식이라는 미명 아래 강화된 방역조치로 인한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다고 AI가 잠잠해진 것도 아니다. 지난 21일 전남 해남 오리농가에 이어 22일 충남 청양 산란계 농장에서 연이틀 AI가 발생했다. 광범위하고도 무차별적인 살처분을 감행했음에도 AI 종식은 아직도 멀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가금류가 희생돼야 AI가 종식될 수 있을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AI 종식을 기원하고 있을 육계농가들이 지난 22일 세종시에서 농림축산식품부를 상대로 집회에 나섰다. 최일선에서 방역활동에 사활을 걸고 있어야 할 전국 각지 500여농가들이 아스팔트 농사를 짓겠다며 거리에 나선 것이다. 

농가들의 불만은 정부의 현실을 외면한 보상금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AI로 인해 이동제한지역내 가축을 입식하지 못한 농가에게 보상하는 방안으로 육계 마리당 128원의 소득안정자금을 지원 대책을 내놨다. 그동안 농가들은 계열화사업에 참여하는 계약사육(육계 91% 계열화)농가의 수익은 마리당 사육비를 받는 구조로 돼 있어 정부가 제시한 128원은 농가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금액이라고 반박해 왔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농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득안정자금을 128원으로 확정하자 농가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농가들은 그간 재산적인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정부의 방역정책에 적극 협조해 왔던 만큼 현실적인 보상방안을 마련해 줄 것으로 믿었지만 보기 좋게 배신당한 것이다.

 농가들의 집회에 당황한 탓인지 이날 농식품부는 사육농가의 수익을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생산비를 산출하고 축산계열화사업에 관한 법률에 관련사항을 개정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농가들의 불신이 팽배하다. 어찌됐든 이번 소득안정자금의 재산정시 농가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농가들은 무기한 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한 만큼 정부의 행보를 눈여겨볼 것이다.

사실 농가들은 그야말로 민초(民草)이다. 이들이 방역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AI와 관련된 지식을 얼마나 깊게 알겠는가. 그저 정부가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해 방역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지난 11월부터 이동제한지역으로 설정된 충북도 농가들은 말 그대로 꼼짝않고 방역활동에만 전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기세는 꺾이질 않았다. 연이어 터진 AI가 농가 탓이란 말인가. 그래서 터무니없는 수당 128원이라는 보상금을 산정해 농가들에게 소득안정자금이라고 내밀 수 있었는지 황당하지 짝이 없다.

이동제한지역내 농가들은 3개월이상 병아리 입식 조차 못하고 있고 언제 입식할 수 있다는 기약도 없다. 닭을 키워야 생계가 유지되는 농가들에게 병아리 입식 금지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벼랑 끝에 내몰린 농가들을 대상으로 몇 푼 안되는 보상금으로 농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들이 영하의 날씨속에 진눈깨비 눈을 맞으면서도 아스팔트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장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막막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선 현장에서 AI 종식을 위해 묵묵히 사투를 벌이고 있는 양계농가들이 더 이상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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