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물 끌어오기 한계… 물꼬싸움도 벌어져

“농사 지은지 40여년만에 이런 가뭄은 처음입니다. 비 내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가뭄이 사상 최악이라는 말이 나온 지 몇 달째다. 올 해는 농업인들의 농사도 사상 최악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아예 올 해 농사를 접은 논도 있고, 쩍쩍 갈라진 논 뺨 사이로 잡풀이 올라오는 논도 있다.

내년은 가뭄은 덜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수년을 넘겨왔고, 쌀 값 역시 매년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농업인들은 농사를 짓는 것이 더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걱정한다. 지난 달 30일 충청남도 보령시와 경기도 평택시의 가뭄 현장을 찾았다.


“물이 없는데 농사를 어떻게 지어”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여기 저기 바닥을 드러낸 논이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물을 댄 논도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를 정도로 조금만 고여 있다.
김재일 농촌지도자충청남도연합회장은 흙먼지만 펄펄 날리는 논만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 농사를 40년 가까이 지었지만 이런 가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저기 봐봐요~ 논에 물이 저렇게 없는데 아무것도 못햐~”
김 회장이 손으로 가리킨 논은 찰랑거리는 물은 고사하고, 흙덩이만 뭉쳐져 있어 언뜻보면 논인지 그냥 땅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바로 옆에는 물이 있지만 염도가 높아 쓰지를 못하고, 버려진 볍씨도 보인다.

쌀 품질 좋기로 유명한 남포면이지만 모내기를 포기한 채 버려둔 논이 곳곳에 널려 있다. 길 한 쪽에서는 멀리서라도 물을 끌어오기 위해 배수관을 설치하는 모습도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남포면은 물을 보내주는 부사호의 염분농도가 증가하면서 영농이 불가능할 정도다. 논 한 귀퉁이에는 아직 심지 못한 모판의 모가 웃자라고 있고, 그냥 쳐다볼 수 밖에 없는 김 회장의 속도 탄다.

“그나마 물 옆에 있는 논은 겨우 물을 대지만 낮은 곳에 있거나, 멀리 있는 논은 아예 엄두도 못내요. 나는 겨우 논에 물을 댔지만 같이 농사짓는 사람들인데 아예 물을 대기 힘든 논을 쳐다보면 마음이 좋지 않아요.”

사정은 남포면 뿐만 아니라 인근 웅천읍도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벼와 열대채소 농사를 짓는 권기석씨는 논이고, 밭이고 다 타들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웅천읍은 웅천천하고 부사호에 의존해서 농사를 짓는데 간척지쪽에 있는 논은 아마 더 망가졌을 것 같아요. 겨울에는 눈도 안왔고, 비를 못 본지가 몇 개월째인데 매년 더 심해져요. 뉴스에서 보면 맨날 가뭄대책 세우고, 회의한다는데 회의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빨리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보령지역의 올해 누적 강수량은 617.3mm로 평년 1,244.3mm의 49.6%, 전년 792.8mm의 77.9%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부사호 염도를 낮추기 위해서 5월말에 간 보령화력발전소와 서천화력발전소에 하루 2만8,000톤의 공업용수 공급을 일시 중단하고, 하루 6만2,000톤씩 모두 18만여톤을 부사호에 내려 보냈다. 하지만 부사호의 담수량 1,017만톤을 희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있는 물이라도 쓰게 해줘봐요~”

“하늘에서 벼농사 접으라고 시위하는 것 같네요. 이런 가뭄도 처음이고, 보이는 물도 제대로 못쓰니 병이 날 것 같습니다.”
같은 날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서 만난 김순영씨는 올 해 농사는 이미 끝난 것 같다면서 푸념했다.

 11,000평의 논에서 기능성 쌀을 재배하는 그는 올해 짓는 농사도 엉망이고, 주 소득원인 오색미의 판매도 줄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김영란법과 대선 등으로 행사가 줄고, 쌀 선물도 줄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논도 보령시와 마찬가지로 바짝 말라 있었다. 논에는 약간의 물이라도 더 대기 위해 양수기 호수가 줄을 서 있고, 저수지에서 논으로 연결된 농수로는 약간의 물만 졸졸 흐르고 있다.

“논에 댈 물도 부족하고, 서로 먼저 물을 대려고 밤낮으로 감시 아닌 감시를 하면서 인심도 흉흉해지고. 이제는 언제부터 이랬는지 기억도 안나요. 빨리 비가 와야 하는데 하늘만 쳐다 보고 있어요.”

말로만 듣던 물꼬싸움도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가뭄이 오래가다 보니 서로 예민해지고, 또 일부 농업인은 자신의 논에 물을 많이 대기 위해 농수로를 막아버리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김순영씨가 농사짓는 마을 바로 옆에 진위천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처럼 여겨진다. 그의 논이 있는 곳은 진위천의 북쪽으로 물을 끌어오는 양수시설이 부족해 원하는 만큼의 물이 넘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4대의 양수기만 가동되고 있다.

“논도 높낮이가 다른데 물을 위에 논부터 아래로 받으면 그나마 골고루 받을 수 있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잖아요. 위에 논은 더 받고 싶고, 아래 논은 빨리 받고 싶고. 그래서 싸움이 나는 거에요. 또 지자체나 기관에 물을 많이 내려달라고 해도 도통 듣지를 않아서 상소리도 나와요. 이럴때는 진위천에 큰 시설을 설치하고 마을에 물을 내려주면 될 것을 자기들도 사정이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어요.”

실제로 이날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 관계자는 “진위천에 양수기를 설치해놨고, 큰 시설 설치의 요구도 받고 있지만 허가 등에 관한 어려움이 있으니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농사에 물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물을 공급받지 못해 농업인들은 애가 탄다. 다행히 지난 1일 보령시에는 비가 조금 내렸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루빨리 비가 많이 내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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