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도 사회활동도 ‘프로’ 당당한 커리우먼


강원도에서도 첩첩오지인 양양군에서 쌀농사와 한우농사를 짓고, 가을 무렵이면 송이버섯을 따는 프로농사꾼 남옥희씨(52세·양양군 현북면). 여성농업인으로서 생활개선회와 농촌지도자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양양군의 여성협의회 부회장, 농업산학협동심의회 위원, 농정심의회 위원, 송이축제 위원회 위원, 음식점 원산지 표시운동 추진위원 등 양양군 발전을 위한 관내 17개 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는 남씨의 다양한 이력에서 당당한 여성농업인의 면모가 엿보인다. 최근에는 주위의 만류에도 강원도생활개선회장에 출마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달 26일 남씨를 만나 미용사를 꿈꾸던 남씨가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7남매의 가난한 종가집 장남에게 시집간 사연에서부터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시동생을 대학공부에다 결혼까지 시킨 고생담, 손바닥만한 농사를 ‘대농’으로 키워낸 성공담, 몇 년전부터 키워가고 있는 여성정치가의 꿈까지 그녀의 지난 인생사와 소망에 대해 들어봤다.



◇미용사 꿈 접고 결혼
양양군 토박이인 남옥희씨는 가난한 농사꾼의 1남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넉넉하지 않지만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다만 가난한 형편 때문에 일찍 학업을 접고 서울로 상경해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미용사의 꿈을 키웠다.
열아홉 되던 해, 이모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 박만준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럭저럭 살림은 넉넉하고 5남매 중 장남이고, 이해심과 인간성이 좋다는 말에 고민 끝에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손바닥만한 농사에 7남매의 종가집 장남인데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데요. 근데 인간성 좋다는 것 하나는 진짜더군요.”

그녀는 속았다는 생각도 했지만 인간성 좋은 남편을 믿고 종가집 맏며느리로서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회상하면서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남편과 함께 얼마 안되는 농사지만 부지런히 일했다. 하지만 워낙 손바닥만한 농사라 시부모에게 따뜻한 밥 한끼 해주는 것도 힘들만큼 살림이 나아지지 않았다.

◇살림 어려워 보험회사 취직
어느날 이렇게 살아선 시동생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태어날 자식도 공부하나 제대로 시킬 수 없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보험회사 문을 두들겼다.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은 남자들도 어려워하는 직업이었고 당시만해도 주부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시부모의 반대는 강경했다.

“여자가 집안 살림이나 하지 바깥일이 다 뭐냐, 여자와 바가지는 밖으로 내돌리면 깨지기 마련이다”며 반대하시는 시부모를 고맙게도 남편이 나서서 설득시킨 덕분에 보험세일즈를 시작하게 됐다.

“용기와 패기,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삶의 욕구와 함께 일에 대한 집념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겠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일했어요.”

그녀는 하루에 100군데가 넘는 집을 다녔다. 발이 퉁퉁 부었고, 집안의 개가 달려들어 크게 놀란 적도 많았다. 실적을 올리지 못해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한 덕분에 일을 시작한지 1년만에 8천~9천만원의 실적을 올릴 만큼 능력있는 보험설계사로 인정받게 됐다. 벌은 돈으로 5마지기의 논을 샀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3명 몫 농사일 혼자서 해내
남씨는 보험세일즈 뿐만아니라 농사일에 있어서도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 버스가 하루에 1대밖에 다니지 않아 교통수단을 해결하기 위해 오토바이와 자동차 운전면허를 땄고, 경운기 운전도 배워서 남편과 함께 쌀농사를 지었고, 살림이 늘어 한우도 키우고 6정보에 달하는 산림도 구입해서 송이버섯도 따서 파는 등 살림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주위의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3명이 해야 할 하루 일을 혼자서 할 만큼 농사일도 세일즈도 열심히 해야 했던” 그녀는 얼마되지 않아 시련을 맞았다.

추수를 끝내고 경운기를 몰고 가던 중 옆에 타고 있던 시어머니가 경운기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다. 뇌와 뼈를 다쳐 3년동안 병수발을 해야 했고, 치료비 때문에 살림은 크게 기울었다.

그녀는 다시한번 마음을 추스르고 열심히 일했다. 보험세일즈와 함께 옥수수를 재배해 인근의 해수욕장을 다니면서 직접 장사에 나섰다. 옥수수를 팔때는 보험세일즈 경험이 빛을 발했다. 누구도 생각지 않은 장사수완을 발휘했다.

“면장에게 옥수수를 팔았어요. 내가 있기 때문에 공무원이 밥먹고 산다는 생각에 강매 비슷하게 했죠.”
행운도 따랐다. 해수욕장에서 옥수수를 팔려면 추첨을 통해 장사권을 따야 하는데 7년 연속 당첨돼 장사를 해서 주위의 시샘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는 농협에 전량 납품하기에 이르렀다.

◇뒤늦게 봉사활동 의미 깨달아
그녀는 10년전 시어머니를 잃었다. 시어머니는 고생스런 몇 년의 병원생활 끝에 돌아가셨는데, 병수발을 하면서 60대의 노수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늙은 수녀님은 노인요양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병수발 했어요. 나이 30세에 한국에 와서 60세가 넘도록 봉사활동을 했는데, 죽는 날까지 신앙을 지키며 봉사한데요.”

노수녀의 봉사정신을 알게되면서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는 그녀는 좀더 일찍 봉사활동을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더 젊어서 봉사의 참뜻을 알았다면 노수녀처럼 평생 봉사만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것. 안타깝게도(?)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강원도생활개선회장 당선
지난 95년 남씨는 양양군생활개선회 부회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농민단체와 인연을 맺었다. 몇 년후에는 농촌지도자회 부회장까지 꾀어 찼고, 2000년부터는 2대에 걸쳐 면회장을 지냈고, 2004년 군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왔다. 올해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회장에 출마해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녀의 도회장 당선소식이 알려지면서 축하 전화와 함께 기분 나쁜 전화를 받았다. 관내 모 여성단체에서 회장자리를 맡기려고 했는데 배신당했다는 내용이다. 그녀의 왕성한 사회활동이 빚은 역효과(?)다.

“강원도생활개선회를 여성농업인단체 중 핵심 조직체로 키워낼 거에요. 특히 개방화 시대에 갈수록 어려워져 가는 우리 농업·농촌의 위기 극복을 위해 도시민의 이해를 이끌어 내는 것도 큰 경쟁력이라 보는데 강원도의 우수농산물 홍보도우미 활동에 적극 나설 생각이에요.”

소탈한 성격이지만 잘못됐다 생각하는 일에는 직선적인 충고를 주저않는 그녀의 당찬 취임 일성이다. 또 “여성단체는 외형적으로 굉장히 잘 꾸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불협화음도 종종 생긴다”면서 “당분간 가장 우선적으로 회원화합과 친목을 다지는데 힘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도전정신으로 최선 다할 것”
당당한 커리우먼 스타일의 패션이 잘 어울리는 남씨는 돋보이는 옷 맵시만큼이나 욕심이 대단하다. 왕성한 사회활동가의 면모가 보이다 못해 여성정치인의 꿈도 꾸고 있다. 이미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모 정당의 기초의원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려 했다가 실패했다. 정치인들의 어두운 면을 보게 돼 안타까웠다는 그녀는 그래도 꿈을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깨끗한 선거문화가 정착될 것이고 그때는 자신도 공정한 선거를 거쳐 당당한 정치인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배움에 대한 열정도 많다. 가정형편 때문에 못다한 공부 욕심에 지난해 강릉대학교 농수산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쳤다. 송이버섯의 인공재배 가능성에 대해 졸업논문을 발표해 전국 최고 논문으로 평가돼 농림부 장관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에요. 농사일도, 사회활동도 일에 대한 집념과 도전의식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그녀의 당찬 자신감에서 생활개선회의 장밋빛 미래를 바라본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