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농업대학교(이하 한농대)의 졸업생 모임에서 회자되고 있는 부부가 있다. 바로 한농대를 졸업한 홍민혜(30세) 씨와 장영(29세) 씨 커플이다.

지난달 27일에 졸업한,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부부가 번식우 200두를 키우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더라는 소문이었다. 올해 인재들이 많기로 소문난 9기 졸업생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성과를 보이고 있는 이들 커플.
이토록 젊은 나이에 농사에 ‘올인’한 사연 좀 들어볼까?



그의 ‘땀’에 반하다
미용일을 하던 홍 씨. 그녀는 일의 특성상 하루종일 서서 일해야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면 스포츠센터에서 몸을 풀곤 했었다. 그러던 중 스쿼시 강의를 등록하고 나간 첫 수업에서 장 씨를 본 홍 씨는 열심히 뛰는 그의 모습에 관심이 갔다. 그때 그녀의 나이 23세.
홍 씨와 장 씨는 서로에게 반해 연애를 시작했다.

그들의 달콤한 시간도 잠시,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자친구 장 씨는 군대를 가야만 했다.
어린 커플들의 가장 큰 장벽이라는 군대도 이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군대생활도 진지하게 열심히 임하는 홍 씨는 스쿼시를 치던 땀에 젖은 그 모습보다도 더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오히려 그 기간동안 제가 더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그냥 아무 의미없이 일하고 즐기고 했었는데 남편이 군대가 있는 기간동안 남편의 열심인 모습을 보고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더 열심히 채찍질하며 실력을 키워나갔죠.”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 남편이 제대할 무렵에는 자신의 미용실도 열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남편이 제대를 했는데, 그 무렵이 남편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저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는데 본인은 이제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장 씨는 많은 갈등을 하고 있었다.

장 씨는 “나이가 들어서까지 운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러다 사랑하는 여자도 생겼는데 안정적이고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제서야 아버지의 농장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왜 그때서야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라며 갸웃거렸지만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의 힘’임을…

믿음이 부른 결실
그렇게 갑자기 장 씨는 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들 남편을 믿었어요. 가족들 모두 워낙에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생각과 갈등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죠.”

시아버지는 서울대학교 농학과를, 시어머니는 서울시립대 잠사학과를 나오실 정도로 농업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그래서 장 씨가 그런 결정을 내리자 시부모님은 장 씨에게도 한농대에 들어가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를 권하셨다.

그렇게 한농대에 입학하고 난 다음해 둘은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홍 씨와 예비 농사꾼의 결혼 승낙 과정이 만만치 않았었을 듯 한데…

“단 한번의 반대도 없었어요. 사귀는 동안 부모님이 남편을 자주 봐와서 사람 됨됨이가 어떤지 알고계셨거든요. 굉장히 믿음직스러워 하셨어요. 오히려 아버지는 자신의 못다이룬 꿈을 사위가 이뤄준다며 기대까지 하셨을 정도였으니까요.”

홍 씨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아버지께 소 5마리를 물려받았었다고 한다. 그 소를 키워 큰 농장을 이룰 꿈에 부풀어 있던 홍 씨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쳐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꿈을 사위가 이뤄준다고 하니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순탄하게 결혼을 하게 됐고, 홍 씨는 장 씨 집안의 며느리가 됐다.

농부가 된 헤어디자이너
결혼 당시 홍 씨는 시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우리나라 최고의 헤어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접어야만 했었다.

“당시 남편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분가를 할 수가 없었어요. 만약 학교에 안들어갔어도 일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겠지만요. 시부모님에 시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살려니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거기다 아이까지 생기는 바람에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가족이 우선이란 생각에 과감하게 포기했죠.”

이왕 포기한거 정말 열심히 일을 도와 시부모님의 귀여움이라도 받자는 생각이 들었다는 홍 씨는 그날로 아버지께 일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한참 고민하시던 시부모님은 홍 씨도 남편과 함께 한농대에 들어가시길 권하셨다.

“그 전부터 대학교에 대한 미련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일을 해야했거든요. 그래서 어느정도 미용실의 기반이 잡히면 미용전문대학에 들어가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분야라도 배움의 기회가 주어져 한 없이 기뻤었어요.”

망설임없이 홍 씨도 남편을 따라 한농대 축산과에 입학했다.
미용같은 유난히도 도시적인 일을 하다가 농사를 지어야하고, 오랜 사회생활에 길들여진 상태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이 만만치 않았을텐데도 홍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토록 원하던 캠퍼스 생활을 만끽하며 좋은 추억들 만들었는데 시부모님은 며느리 가르쳐보겠다고 갓난아이 돌보시면서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았죠.”

홍 씨는 2004년, 한농대에서 미래 농사꾼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나를 지탱해준 사랑하는 가족들”
그토록 원하던 대학생활이었지만 얼마되지 않아 홍 씨에게 위기가 닥쳤다.
당시 2학년이었던 남편은 실습을 나간 상태라 혼자 학교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던 홍 씨는 홀로 낯선 곳에서 겪어보지 못한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남편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눈에 밟혀서 잠도 못잤어요. 수원과 김천이 멀다는 생각도 못하고 주말마다 내려와서 아이를 보고 올라갔죠. 시험기간이나 다른 일이 생겨 못내려가는 날에는 한주가 공부도 안되고 일이 손에 안잡혔어요.”
결국 홍 씨는 남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런 홍 씨가 안타까웠던 장 씨는 휴학을 하고 장 씨의 실습기간동안 같이 농장에서 인턴으로 일을 배우며 1년을 보냈다.

“남편과 같이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하니까 힘이 불끈 솟더라구요. 정말 열심히 잘 해낼수 있겠다 싶었었는데…”하며 홍 씨는 말끝을 흐렸다.

“정말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마지막 학년이었는데 어느 날 수업을 들어가자 교수님께서 ‘임신한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아닐꺼라 여기면서도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갔는데 임신이었어요.”

그날부터 갈등에 휩싸인 홍 씨. 아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못하게 되진 않을까, 또 아이도 이런 엄마 때문에 뱃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는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휴학을 할까 아이를 낳지 말까 여러 고민을 하던 홍 씨는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결심했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을텐데 시작도 하기전에 이런 약한 마음을 먹는 저 자신이 용서가 안됐어요. 내가 선택한 인생, 힘들어도 다 견뎌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다 잡았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둘은 졸업을 했고, 현실에 뛰어들었다.


하나의 씨앗이 꽃이 피우기까지…
현실에 뛰어들었을때 둘을 가장 힘들게 한건 고된 노동이 아니었다. 도시생활에 젖을대로 젖어 있었던 둘이 갑갑할 수도 있는 농촌생활을 견디기란 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농촌생활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힘들다고 자꾸 피하기만 할 수는 없었어요. 이왕에 축산으로 성공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누군가를 본보기로 정해놓고 따라해서라도 적응을 해야했죠. 그런데 다행히도 시부모님이 모범적인 농업인의 전형이셨거든요. 그래서 시어머니를 인생의 ‘롤모델’로 정하고 항상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부모님을 섬기는 부부를 보고 배운 것일까? 올해 6살 난 아들 장비는 엄마아빠를 본받아 농장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시키지 않아도 똥치우고 짚나르는 일을 도와주는 아들을 보고 부부는 결심했다.
“아버지의 꿈이 가족 기업형 농장을 만들어 부자가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뿌린 씨앗으로 지금 싹을 틔우는 거죠. 아들이 꽃을 피울 수 있게 열심히 밑거름을 주고 있는 중이예요.”

그래서 부부는 당장의 성공을 바라진 않는다. 아버지에 이어 자신이 일구고 아들대에서 결실을 맺는 3대에 걸쳐 튼튼한 기반이 다져진 튼실한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편꿈, 내꿈 모두 포기못해
이렇게 농촌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며 살고 있지만 항상 자신의 일이 그리울 듯 한데…
“사실 지금도 다시 시작하라면 열심히 할 수 있을 만큼 미련이 많아요. 그래도 지금은 꿈이 생겨서 그 꿈을 이룰 생각만 해도 설래요.”
과연 그 꿈이 뭘까?

“3년에서 5년사이에 지금의 농장을 완전 승계받기로 했어요. 지금은 경영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단계인데 완전 승계가 끝나고 나면 남편에게 축산일을 일임하고 저는 체험농장을 운영해볼까 생각중이예요.”

홍 씨는 미용기술과 축산을 연계한 ‘웰빙미용’체험농장을 구상하고 있다. 학교때 배웠던 아로마테라피와 미용기술을 접목시켜 미용체험을 하고 밤마다 농장에서 키운 한우로 바비큐파티를 여는 그런 이색체험농장이다.
“미용과 농업도 접목이 가능하겠더라구요. 이렇게 하면 남편의 꿈도, 제 꿈도 둘다 포기 할 필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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