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품은 꽃,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베다

  
 
  
 
살로메는 지난 2천년 기독교세계에서 대표적인 요녀로 꼽혀왔다.

살로메는 권력암투를 위한 대량 살상이나, 음모나 투기로 무고한 연적들을 고문하고 살상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살로메는 단 한 번의 강렬함(?)으로 특히 기독교 세계에서 악마의 딸처럼 인식되고 있는 인물이다.

살로메 이야기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은 세례 ‘요한’ 이라 불리는 유대민족의 선지자이다. 살로메 이야기는 그를 빼놓고선 성립되지 않는다.

서기 30년경의 일이다.
유대민족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지역도 세계제국 로마의 힘을 피할 수 없었다.
로마는 유대를 점령하고 현지인 ‘헤롯’을 왕으로 삼았다.
이때는 예수가 30년간의 은둔생활을 접고 세상에 막 떨쳐 나와 공생애(성서에서 말하는 메시아로서의 활동)를 시작한 때였다.

유대민족은 예로부터 유일신 여호와를 믿어왔다.
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어 자기들이야말로 우주의 창조주요, 주재자인 여호와가 택하신 거룩한 민족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유대민족의 역사는 정작 별로 내세울 것이 못된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유대민족을 이끌고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후(기원전 2000년경)로 그들은 툭하면 망하고 툭하면 이민족에게 점령당해 잠시라도 편한 날이 없었다.

유대민족은 ‘언젠가는 메시아(구원자)가 나타나 로마를 쓸어버리고 유대민족을 구원할 것’이라며 구약성서가 약속한 말씀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그때 요한이라는 자가 등장했다.
그는 선지자요 예언가였다. 유대민족에게는 예로부터 선지자 또는 예언자로 불리는 독특한 종교지도자가 있어 백성들을 가르쳤다.

그는 광야에 기거하며 가죽 옷을 입고 메뚜기를 먹으며 살았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 우리라.“ 요한은 유대민족에게 우리가 여호와의 선민이라고 잘난 척하지 말라고 꾸짖었다. 잘 못하는 사람들은 다 심판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다.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 까.”

그는 답한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굶주린 자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세리(세무서 직원)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물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 까.”
요한은 “(정당한)세 외에는 억지로 거두지 말라”고 말했다.

군병들도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 까.” 다시 요한이 답한다.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너희들이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요한은 이런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정의와 나누는 삶을 주장했고 권력에 의한 수탈을 엄중히 경고했다.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썩은 나무뿌리처럼 도끼질 당해 불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라고 설교했던 것이다.
요한의 말은 힘이 있었고 권능이 있어 사람들은 그가 여호와가 악속하신 그 ‘메시아’(구원자)가 아닌가하고 궁금해 했다.

그래서 묻는다. “선생께서 혹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우리민족의 구원자 아닌가요?”

요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요한이 말하는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는 바로 예수를 나타낸다.

그는 “나는 그 분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불렀다.

헤롯의 부정(不正)
그런 요한이 유대 왕 헤롯에게 일갈했다.
“이번에 왕께서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큰 죄가 됨이라.”
헤롯은 크게 분노했다.
헤롯은 자기 이복형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복형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 어긋난다.
그러나 헤롯은 헤로디아의 눈부신 미모와 관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여봐라, 저 건방진 요한을 잡아들여라.”

요한은 헤롯에 잡혀 투옥됐다. 그러나 그는 투옥된 후에도 계속 헤롯을 책망했다.
“저 못된 놈을 가만두지 않겠어. 온갖 고생을 시킨 후에 내 직접 죽여 버리리라.”

“왕이시여. 제발 그것만은 참으셔야 합니다. 백성들이 그를 메시아처럼 떠받들고 있는 줄 모르십니까? 그를 처형했다가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어쩌시렵니까?”
“으음~그렇군. 빌어먹을 자식”

헤롯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음흉하고 방탕하고 여성편력이 있었던 헤롯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바로 재혼한 아내 헤로디아가 데려 온 의붓딸 ‘살로메’였다.

의붓딸이지만 이복형의 딸이었으니 조카인 셈이다.
처음 봤을 때 어린아이였던 살로메는 헤로디아가 궁중에 데려 온 후로 나날이 성숙해 져 갔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 어미의 관능미를 뛰어넘는 엄청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헤로디아를 차지했으나 공개적으로 그 딸까지 넘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헤롯은 살로메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만 했다.

특히 그 춤사위. 살로메의 춤은 어떤 남자라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농염한 그것이었다.
요염하고 관능적인 모습으로 일곱 개의 베일을 하나 씩 벗으며 살로메가 춤을 추면 헤롯은 욕정을 견딜 수가 없었다.(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헤로디아도 남편이 살로메에게 욕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헤로디아는 자신에게 부정하다며 잔소리를 퍼 붇는 요한을 죽이고 싶었다.
그녀는 딸의 관능과 헤롯의 욕정을 이용하기로 했다.

욕정의 잔치
마침 헤롯의 생일이 돌아왔다.
헤롯은 주변의 방백들과 유력자들을 모두 불러 성대한 생일잔치를 베풀었다.

잔치는 산해진미와 포도주로 가득했다.
거듭 권해지는 술에 헤롯은 기분이 흡족했다.

“왕이시여. 민수무강하소서. 그 현명함과 명철한 지혜로 우리를 영원히 다스려주소서.”
하객들의 아첨과 추켜세움에 헤롯의 기분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무희들은 연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지만 헤롯은 뭔가 아쉬웠다.

살로메의 춤! 그것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헤로디아는 이를 간파했다.

“여봐라 살로메에게 춤 출 준비를 시켜라. 일곱 개의 베일을 준비해 입히고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게 하여라.”
살로메는 예의 그 섹시한 베일 옷을 입고 잔치마당 한 가운데로 들어왔다.

살로메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으음~’ 헤롯은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손가락 끝에서 다리 끝까지 살로메의 움직임은 좌중의 모든 남성들을 자극했다.
팔레스타인 지역 특유의 풍성하고 육감적인 춤은 예로부터 여성의 라인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격렬한 몸동작으로 여성 성(性)을 강조해왔다.

먼 아프리카 북부로부터 소아시아, 인도북부에서까지 찾아 온 손님들 모두가 살로메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헤롯은 눈으로는 살로메의 몸을 탐닉하며 입으로는 연신 술을 가져갔다.
출렁이는 불빛 사이로 살로메의 실루엣은 더욱 흐느적거렸다.
헤롯은 거친 숨을 연식 턱턱 뱉어내고 있었다.
헤로디아는 이를 놓이지 않았다.

“여보 손님들이 무척 즐거워하고 있어요. 살로메의 춤은 정말 대단하지요?

춤이 끝나면 살로메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말해보세요. 잔치를 빛낸 저 아이이게 큰 상을 내려주세요.“
살로메의 춤이 끝나고서도 궁중안의 사람들은 한 동안 말을 잊었다.

정신을 차리고 한차례 긴 박수가 끝난 후 헤롯은 살로메를 불렀다.“정말 대단한 춤이었다. 내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원한다면 이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노라.”

이때 헤로디아가 나섰다.
“잠깐 땀이라도 닦으렴.” 헤로디아는 직접 살로메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잔혹한 소원
잠시 후 모녀가 밖으로 나왔다.
“그래 원하는 것을 결정했느냐?”(헤롯)
살로메는 얼굴빛하나 변하지 않고 냉혹하고 주저함 없이 말했다.

“요한의 머리입니다. 그것을 은 접시에 올려 내게 가져 다 주세요.”
헤롯은 물론 좌중의 대신들과 손님들까지 살로메의 말에 얼어붙고 말았다.
요한의 목이라는 요구도 엄청난 일이지만 살로메의 그 태도는 뭔가!

저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인이, 저 어린 여자가 어찌 그런 끔찍한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단 말인가!
“허허허~ 네가 아무래도 농담을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요한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함하고 다녔다고 그를 미워하는 네 마음은 잘 알겠다. 진짜 소원을 말해 보거라.”

살로메는 헤롯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왕께서는 나라의 반이라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저의 소원은 단 한가지입니다. 쟁반위에 놓여있는 요한의 목입니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당황한 헤롯은 몇 번이나 소원을 철회할 것을 말했지만 살로메는 물러서지 않았다.
수많은 방백들 앞에서 헤롯은 한 번 약속한 것은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잠시 후, 요한의 머리가 은쟁반위에 놓여 궁중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요한의 더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뒷이야기
성서(마태복음 14장)와 고대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요셉)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살로메 이야기는 요한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야설에는 또 다른 뒷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는 살로메가 요한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것이다. 살로메는 요한이 투옥된 옥에 수시로 찾아가 사랑을 고백했으나 그 연정을 받아 줄 요한이 아니었다.

살로메는 요한의 목이 오자 그의 잘린 목을 끌어안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순간 엄청난 질투에 사로잡힌 헤롯은 살로메의 목을 베고 만다.

또 하나는 이후 살로메에게 정신적인 질환이 찾아와 광야를 헤매는 광녀가 됐다는 설.그녀는 북부 시리아 쪽으로 갔다가 언 강을 건너다 빠졌는데 날카로운 얼음에 그만 목이 잘리고 말았다고 한다.

모두가 살로메의 비참한 죽음을 그리고 있다. 살로메는 그 차가운 한 마디로 선지자 요한을 죽게 함으로써 기독교세계에서 2천 년 간 마녀나 악마의 딸처럼 여겨져 왔다.

한순간의 냉혹함과 비정함으로 그 어떤 살인광들보다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살로메는 묘한 마력을 발산한다.
살로메이야기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어 연극, 영화, 문학작품으로 재탄생됐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살로메 보다는 그 어미 헤로디아가 더 악녀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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