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의 산머루농원.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최고 수준의 머루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직접 머루농사짓는 과수원 규모만 23,135㎡(7천 평), 주변 계약재배하는 50개 농가의 머루과수원 규모를 합치면 495,750㎡(15만 평)에다 머루즙을 만드는 공장 200㎡(60평), 머루주 만드는 공장 200㎡(60평), 발효실 200㎡(60평), 지하숙성실 400㎡(120평), 지하저장터널 230㎡(70평), 저온 저장공 274㎡(83평), 제품창고 595㎡(180평), 제품 홍보관 100㎡(30평)까지… 규모 얘기만 들어도 숨이 찰 지경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머루주는 일본, 미국, 홍콩, 싱가폴에 수출되며, 국내 대형할인점, 백화점, 유기농 매장과 각종 식당, 그리고 육·해·공군에 군납을 한다고 한다.
이 모든 사업을 물려받을 주인공들은 바로 한국농업대학(이하 한농대)를 졸업한 신지희(29세) 씨와 서충원(31세) 씨다.


내 길은 농사뿐이다
신 씨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양돈을 했다. 남자의 도움없이 여자 혼자의 몸으로 축산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늘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봐온 신 씨는 마음 한구석에 어머니의 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꼭 축산을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농업고등학교는 가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그렇다고 인문고등학교에 들어가 엄마에게 대학등록금 부담도 지우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상업고등학교였어요.”

어머니의 일을 돕겠다던 신 씨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3년동안 여러 가지 꿈이 생겨났다. 또 아무런 지식과 기반없이 농사일을 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공무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 씨는 학원에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렇게 2년동안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신 씨에게 귀가 확 트일 정보가 들어왔다.

동네의 아는 분이 한농대란 곳이 있는데 괜찮더라며 어머니께 하시는 말을 듣는 순간 신 씨는 ‘바로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학교에 들어가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다보면 엄마일을 도와 축산으로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공무원이 돼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제 일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란 생각도 들었구요.”

그 길로 신 씨는 한농대에 입학원서를 냈고, 망설임없이 축산과를 선택했다. 2학년 실습도 본인의 선택으로 캐나다의 양돈농장을 갈 정도로 양돈에 대한 신 씨의 꿈은 확고했다.

“한국도 아닌 타지에서 여자가 하기 힘들다는 축산일을 하면서도 외로움외에 특별히 힘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축산일이 재밌고 적성에 맞았어요. 아마 남편을 안 만났더라면 혼자서라도 축산을 했을 것 같아요.”

한눈에 알아본 ‘인연’

이렇게 축산에 푹 빠져있던 신 씨를 축산의 매력에서 빼낸 남자는 과연 누굴까? 한농대에 다니면서 신 씨는 동북아농업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다. 3학년이 되던 때 동아리 사람의 소개로 신 씨는 지금의 남편인 서충원(31세) 씨와 소개팅을 하기로 했었다. 주변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만나기도 전 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정말 둘이 인연이었을까? MT를 갔는데 그곳에서 서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은 서 씨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머루농장이었던 것이었다.

“만나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말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전부터 느낌이 좋았죠. 그런데 그곳에서 신랑을 보자마자 ‘아, 이사람이다’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같이 놀며 얘기하며 하루 사이에 정이 푹 들어버렸죠.”
그렇게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엄마를 도와 양돈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나서 남편의 성실한 모습과 남편의 희망과 계획을 듣고는 내 꿈을 접고 이 남자의 꿈에 투자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학교를 졸업할 때쯤 엄마가 고된 양돈일로 허리를 못쓰게 되셨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지만 오래 서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빨리 물려받아야지 하던 차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됐고 남편의 일을 같이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서 신 씨가 한농대를 졸업할 때 어머니도 같이 양돈을 졸업했다. 지금 신 씨의 어머니는 신 씨의 동생과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하루 배우는 마음으로
2004년 결혼을 하고 2005년에 아이가 생기기까지 신 씨는 남편과 함께 머루 농장일을 돕기 시작했다.
“전공도 축산이고 늘 봐오던 게 축산이라 내가 과연 이쪽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됐어요.”

그러나 막상 결혼해서 농장에 나와보니 머루를 재배하는 현장에는 신 씨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곳은 1차산업에 대한 일도 있지만 가공사업과 함께 기업형으로 운영되고 있다보니 직원들이 많아 신 씨가 직접 농사일에 투입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워낙에 일꾼들과 직원이 많아 남편도 재배보다는 와인생산에 주로 투입되고 있었다.

“이곳은 규모가 큰 편이라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 만해도 7~8명이 되다보니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사무적인 일 처리하는 일을 돕는 것도 중요해요. 그래서 시집와서 아기 낳기까지 1년동안 사무실 일을 배웠죠. 어찌보면 우리가 사업을 물려받기 위한 핵심적인 부분을 배우고 있는거예요.”
지금은 단지 산머루농원에서 일하는 한명의 직원일 뿐이지만 5년안에 차근차근 승계를 받을 계획이다.

“첫째아이 승현이가 올해 3살이예요. 아이가 좀 커서 일을 시작하려고 했더니 둘째가 생겨버렸어요. 다음달 26일이 출산 예정일이거든요. 그래서 당분간은 일을 못할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워요. 정말 열심히 배워야 할 시기인데…”라고 말하는 신 씨의 표정이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그래도 남편이 아버지 일을 물려받는 후계자 수업중이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받은 후계자금 8천만 원까지 투자했는데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이 불만스럽지는 않을까?

“시집와서 일을 한다기보다는 하루하루 수업을 듣는다는 심정으로 일했어요. 지금 시어머니가 하시는 일이 장래 제가 할 일이잖아요. 말씀 한마디며 기술 한가지며 놓칠수가 없더라구요. 수업료를 내야하는 판에 월급까지 받고 생활비 한 푼 안들이고 살아갈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최고의 와이너리를 꿈꾸며

1년 365일 돌아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편히 여행을 다니거나 쉴수가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 불만을 가질 법도 한데 부부는 둘 다 ‘그게 문제가 되나?’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농업이란 직업을 선택한 이상 감수해야할 부분이죠. 직업의 특성이니까요. 농사라고는 하지만 저희는 가공사업까지 하기 때문에 휴한기가 없어요. 그래도 틈틈이 시간을 내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 사업 승계에 대해 물어보니 남편 서 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 한농대 졸업생들의 문제점이 너무 서두른다는 거예요. 물론 그 서두름이 활력이 돼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님의 농사를 물려받는 입장에서 서두르다보면 부모님의 농업방식과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예요. 저희는 부모님이 하실 수 있는 한 하셨으면 좋겠어요.”
서 씨의 말에 신 씨도 바로 맞장구를 쳤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지금도 기반이 탄탄하고 자리잡혀 있지만 지금 성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물려받으면 오히려 후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공하는 과정에 제일 가까운 곳에서 그 노하우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저희한테는 큰 재산이예요.”
부부의 이런 말을 들으니 너무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는데…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 이끌어주시면 좋겠지만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한해한해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예요. 그래서 열심히 배워 5년안에 공장일을 물려받을까 생각중입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승계 절차를 밟아야죠.”
앞으로 이곳에 체험농장까지 운영 할 계획이란다. 원래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올해 이미 사업을 시작해야했겠지만 예산상의 문제가 생겨 조금 지연되고 있다.

“체험농장일은 아무래도 여자의 손이 많이 가는 사업이예요. 지금, 아니 당분간은 아이 때문에 그 일에 뛰어들순 없겠죠. 당분간은 시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배워가야겠죠. 그래도 언젠가는 제가 체험농장을 맡아서 관리하고 싶어요.”

지금 현재도 규모는 작지만 유럽의 와이너리 시설 못지 않다고 자부하고 있는 신 씨 부부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본받아 대를 이어 발전시키는 와이너리를 꾸리고 싶다고 한다.
경기도 파주에 국내 최고, 아니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몇백년 전통의 와이너리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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