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취득에 남편 신원보증 필요…신고 못해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어린 자식 앞에서 베트남 출신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남편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결혼이주여성 다수가 이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7월부터 8월까지 우리나라에 사는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42.1%(387명)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복수 응답한 피해 유형으로는 주먹질과 발길질 등 신체 폭력이 38%(147명), 심한 욕설은 81.1%(314명)다. 이 사건 가해 남편이 “베트남 음식 만들지 말라고 했지”라며 윽박질렀듯 한국식 생활방식을 강요한 사례는 41.3%(160명)를 차지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 가운데 263명(68%)은 성적 학대까지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단법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파악하기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숨진 결혼이주여성은 2007년 이후 현재까지 21명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경남 양산에서는 부부싸움을 하다가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인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50대 남편이 경찰에 붙잡혔다.

건강가정지원센터 관계자는 “결혼이주여성이 당한 가정폭력 피해는 남녀 간 권력 관계,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국가 출신이라는 외국인 차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라며 “평등한 가족 관계를 만드는 정책 개선과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를 봐도 다문화가족의 이혼·별거 사유 가운데 학대·폭력(8.6%)은 성격 차이(52%), 경제적 문제(12.6%) 다음으로 많았다. 특히 학대·폭력을 이혼·별거 사유로 꼽은 응답은 결혼이민자(9.5%), 여성(10.2%), 20대(24.8%) 집단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때는 여전히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배우자가 국적취득 등을 볼모로 이주여성을 협박하거나 폭력을 행사해도 이주여성이 폭력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작년 한 해 경찰청에 집계된 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만 1,273건. 검거된 인원은 1,300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33명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불구속되거나 보호처분을 받았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