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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바우 부부의 농사이야기- 가을에 부치는 편지
2019년 10월 04일 (금) 13:51:09 경북 김천의 유기농사꾼 이근우 씨 .
   
가을이 제 아내에게는 우체통인 모양입니다. 편지봉투에 ‘봄파종’이라는 제목 아래 ‘방풍, 옥발토마토, 시금치, 오렌지 단호박, 왕오이, 골든베리’ 등이 적혀있군요. 각기 다른 제목이 달린 봉투들이 두툼합니다.

대부분 종자로 번식이 가능한 재래종이거나 고정종자들입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씨로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작물들이 많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해진 씨앗들이 아내의 편지봉투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용하는 농작물 중 많은 것들이 종자번식이 거의 불가능한 단세대 종자, 이른바 F1종자입니다. 유전자 조작은 아니지만, 교잡이라는 정교한 개량을 통해 만들어진 잡종종자들인 것이죠. 이러한 개량종은 생육과 결실에서 매우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작물의 고유한 특성이 약화되는 단점이 있고, 풍토성이 거의 없어 예기치 않은 환경변화에 취약한 단점도 있습니다. 더구나 농민들이 종자회사에 종속되는 폐단은 심각한 고민거리입니다. 우리 부부와 달리 대규모영농을 하는 농민들에게 종자의 품질과 가격은 수익구조와 관련하여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부부는 여러 해에 걸쳐 귀하게 모셔온 종자들을 조금씩 심어 맛을 보았습니다. 기분 탓인지 토종이나 재래종은 그 생장과 맛이 무척 각별했습니다. “와, 이거 많이 길러보자.” 제가 이렇게 흥분하자 아내는 늘 그렇듯 신중했습니다. “작물이 계속 개량되는 건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거든.” 저는 농산물이 상품화되면서 생긴 편의성이 전통 농작물을 밀어냈다, 단순한 맛에 길들여진 탓에 작물의 고유한 속성이 사라져간다는 식으로 반론을 폈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농업 자체가 경제성을 지향하는 산업이어서 간결한 식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맞서더군요. 토종이나 재래종의 독특한 맛의 근원인 풍토성은 다른 한편으로는 편협성이기도 합니다.

 재배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고, 그래서 품질의 균일성을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직해서 유연성이 떨어지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게 꼭 나쁜 것이냐는 것이 제 생각이고, 아내는 바로 그 점이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부부지간의 논란은 가끔 부부싸움으로 변질되기도 하면서 지금껏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토종과 재래종의 각별한 맛깔스러움에서 배어나는 매력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열심히 종자를 찾아 모으는 것이죠. 조만간 커다란 종자 보관함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돋보기까지 끼고 종자를 분류하다가 봉투를 하나 제 앞으로 툭 던지며 읽어보라고 합니다. “가을파종. 토종갓, 대평무, 보라뿔시금치, 자수정찰보리, 앉은뱅이밀.” “무슨 시 같지 않아?” 그렇군요. 아름다운 이름들입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제가 흥이 나 이렇게 노래하자 아내가 말귀가 어둡다고 타박합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가을파종’ 항목들을 심을 밭을 마련하라는 군요. 그런 건 미리 말해야 거름도 진작 넣고 하는 것 아니냐고 어깃장을 놓자 일일이 말해야 아는 사람이 무딘 것 아니냐고 아내가 되받습니다. 그리고 아예 명토 박습니다. “당신은 덤바우 토종 되려면 멀었어, 멀어.” 이렇게 나올 때에는 그저 하던 노래나 계속 합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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