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까지 겹쳐 수확 포기 농가 속출

농가 ‘대출금 상환 기간 유예’ 등 호소

고랭지 무 주산지인 강원도 홍천지역 무 재배 농가들이 수확을 포기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지만 무 가격 폭락에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영농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강원도 고랭지 무 생산량의 7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홍천군 내면 일대. 지나면서 보이는 길옆 여러 밭에서 무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병해로 질이 나쁜 무가 아니다. 어른 장딴지만큼이나 굵고 튼실한 무가 여기저기에 잔뜩 널부러져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코로나19 여파로 소비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상 여건이 좋아 무 생산량이 평년 대비 급증해 무 가격이 폭락한 것이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무 재배농가 김종순(68)씨는 “수확기를 맞은 무를 도매시장에 판매하려고 했지만 무 가격이 폭락해 판매 수익으로는 운송비조차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며 “선도금 형식의 대출금을 내달 말까지 갚아야 하는데 올해 농사에선 적자 누적이 수억 원에 달해 대출상환을 위해서는 농지 등 부동산을 처분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김씨에 따르면 무 20kg 한 상자를 출하하기 위해서는 작업비 1300원, 상자(박스)비 1200원, 운임 1000원, 수수료 700원 등 4200원 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최근 무 도매가격은 한 상자에 2000~5000원 수준으로 거래됐다. 재고가 많은 탓에 김치공장 등에도 출하가 어렵다. 어렵게 판로를 개척한 김치공장으로 출하해도 박스당 수취가격은 1000원 수준. 출하작업을 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수급의 어려움으로 인건비가 예년보다 50% 이상 상승해 인력을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친 무는 과하게 자라 상품성이 떨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농민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고지대인 내면 일대는 연중 일교차가 큰 기후 여건을 활용, 감자를 먼저 심어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무를 심는 2모작 형태의 농사를 짓는데, 적체된 무를 처리하기 전까지는 감자 수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김씨는“정부 차원의 계약재배에도 성실히 협조했는데 그 결과는 원가조차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이라며“정부에서 대출금(선도금)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작업비 일부(박스비 등)라도 지원해주기를 바란다”고 간곡히 전했다. 


이 같은 농업 현장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과 관계자는 “현장 농가들이 요구하는 대출금(선도금) 상환유예는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으로, 현재로선 검토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면서“생산비(작업비 등)의 지원 또한 기존 편성된 농산물가격안정기금 예산 한도에서는 추진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어 말했다.        


이에 반해 강원도는 피해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소비촉진 활동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강원도는 카카오커머스의 주문제작 플랫폼인 카카오메이커스와 협약을 맺고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강원 청정 고랭지 무’판매 행사를 열어 20kg 단위 4000박스의 무를 판매했다. 이어 지난 23일부터는 LG헬로비젼의 홈쇼핑 채널을 통해 도내 산 무 2500박스의 판매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애타는 농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현장 농민들의 전언이다. 농민들은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풍년의 역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정부는 변화하는 시장 상황과 기후 조건에 따른 세밀한 농업 관측을 통해 적정 생산량을 유도하고, 수급 조절 기능을 강화해 가격지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달 말부턴 고창지역 가을무와 제주 겨울무가 차례로 출하를 앞두고 있어 수급 불균형에 따른 무 재배 농가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