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생활개선회 조규숙(46세) 회장을 모르는 사람이면 처음 조 씨를 보고 농사짓는 사람 맞냐고 물어보곤 한다. 실제로도 조 씨의 외모는 농촌보다는 도시의 아파트 단지가 더 잘 어울릴 듯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활개선회장단 중 가장 어리다고 한다. 젊고 세련 된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농촌을 사랑하는 조 씨는 태안, 아니 생활개선회의 젊은 피이자 희망이다.


농촌이 좋아라
“다들 그래요. 방금도 정수기 관리해주시는 분이 와서 농사 안짓나보다고 말하더군요. 외모를 보고 도시에서 사는 사람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번도 도시를 그리워 한적도 없는 토종 농촌 아줌마예요.”
어려서부터 조 씨는 농촌이 좋았다. 단 한번도 농촌에 살아서 갑갑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도시에서 지내는 하루는 조 씨의 숨통을 조여오기 일쑤였다.

“지금은 생활개선회장 활동을 하느라 집안 일에 많이 소홀해요. 농사일은 남편에게, 집안일은 시어머니께 지원 요청을 해 놓은 상태죠. 지금은 그렇지만 그래도 그 전에는 정말 일 많이 했었어요. 가끔 일을 안할 것 같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때는 오히려 서운할 때도 있을 정도라니까요.”
조 씨는 21살 어린 나이에 남편 이상화(50세) 씨와 결혼했다. 어린 나이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농사일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법 한데 조 씨는 고개를 저었다.

“힘든줄 몰랐었어요. 어려서부터 농촌이 좋았고 농촌에 살면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쉽게 적응 할 수 있었죠. 물론 어른들 모시고 살면서 아이 키우고 농사 짓는 것이 쉬웠다고만은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생활이 좋았어요.”

‘유비무환’ 배워서 남 주나?
이렇게 바랄 것 없는 농촌생활이지만 단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배움의 기회’였다.
“아무래도 도시에 비하면 농촌이 배움의 기회가 적잖아요. 그래서 늘 배움에 목이 말랐나봐요. 다른 것은 불만이 없는데 배움에 대해서 만큼은 항상 부족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결혼을 하고 늘 나를 위해 이것 세가지 만큼은 준비하자고 다짐했었죠.”

바로 그 세가지는 운전면허증과 조리사자격증, 미용기술자격증이었다.
당장 사용할 곳은 없었지만 자격증을 따는 과정에서 배움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가실수 있었고 자격증을 손에 쥐는 순간 해냈다는 짜릿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처음 이 세가지를 준비할 때만 해도 이 세가지를 따놓으면 어딘가 쓸모가 있을 줄 알았어요. 운전면허증이야 당연히 농촌에 살면서 필요한 것이고 조리사 자격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농촌의 학교들에 급식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미용기술 자격증도 마찬가지로 큰 일이 닥쳤을때 기술이라도 있어야 힘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다 한발 씩 늦었어요. 학교급식조리사를 기대하며 조리사자격증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농촌에 급식이 시작됐어요. 자격증을 땄을때는 이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자리를 잡은 뒤더군요. 그러고나니 계속 해야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미용사 자격증은 따지 못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배움이라는 것 자체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발마사지와 수지침을 배우게 됐어요. 배워서 남주는 것 아니잖아요. 이미 자격증을 따는 과정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느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또 이것들이 언제 제게 도움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죠”

더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친정 엄마가 몸이 편찮으신데 혼자 지내고 계세요. 가까이 살고 있어 자주 가서 보살펴 드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죠. 늘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다보니 엄마 또래의 노인분들을 보면 늘 마음이 쓰여요.”
그래서 동네의 어른들을 위해 반찬도 해다 드리고 이것저것 봉사활동을 하곤 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대신 장을 보기도 하고 양말이며 속옷도 사다드리고 밑반찬도 해 드렸다. 또 요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가 많다는 소문에 개인적으로 안전교육도 시켜드리기도 했다. 조 씨에게 도움을 받은 노인들은 조 씨를 수양딸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노인분들을 보면 조 씨는 항상 미안하기만 하다.
“회장직을 맡고 나서 예전보다 자주 못 찾아 뵙고 있어요. 오랜만에 오면 ‘많이 바빴어?’하고 물어보는 할머니들을 볼 때면 죄송스런 마음 뿐이죠.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늘 이것밖에 못하는 제가 원망스럽기까지 해요.”
조 씨가 미안해하는 사람은 할머니들 뿐만이 아니었다.

“제가 말투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무슨 일을 지시할 때 명령조로 할 때가 많아요. 물론 평상시에도 그런 것은 아니지만 큰 일이나 바쁜일이 지나고 나면 ‘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분들에게 내가 심하게 한 것은 아닐까’ 고민이 될 때가 많아요. 그런데도 생활개선담당 공무원 선생님을 비롯해서 회원들 모두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잘 따라주는 모습을 볼때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더 잘해야지 생각이 들죠.”

받은 사랑 몇 배로 갚을께요

올해 태안은 기름 유출사고로 그 어떤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었다. 많이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태안군민들은 온 국민의 정성과 도움으로 힘든 시기를 잘 견뎌오고 있다.

“정말 고맙죠. 생활개선회를 통해서도 많은 성금과 정성이 전달됐어요. 그 분들의 사랑을 지금 당장 갚을 수는 없겠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태안의 대표적인 홍보대사 생활개선회원으로서 태안군민을 대신해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당장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란 벅차다. 하지만 그분들이 주신 도움을 정말 값지게 쓰는 것도 보답이라는 생각에 단 한푼의 성금도 허튼곳에 쓰이지 않게 하는데 생활개선회가 앞장서고 있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을 선정하는 작업도 까다롭게 진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다들 고마움을 표현할 여력이 없지만 일부러 고생하러 와준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 한번만 지어주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당부를 잊지 않고 있어요. 늘 보답할 수 있는 일을 찾기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사업가로 변신해볼까?
조 씨는 지금 마늘비누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이 마늘 비누는 태안군농업기술센터에서 생활개선회를 위해 마련해준 소득 사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쁜 농사일로 회원들은 부담을 느끼게 됐고 담당공무원도 힘에 겨워했다.
“회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라는 생각에 제가 이 사업을 맡기로 했어요. 지금 1년 정도 됐는데 처음 시작할때는 고생도 많았죠.”

처음에는 마늘 비누뿐만 아니라 마늘샴푸, 마늘세제도 있었다. 하지만 생산단가가 워낙 높아 계속 유지가 힘들었다. 결국 샴푸와 세제는 포기하고 마늘 비누 하나로 승부를 걸었다.

“상표등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홍보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발로 뛰는 홍보와 입소문으로 승부를 걸어야했죠. 그러려면 품질이 좋아야 하지 않겠어요?”

조 씨는 어딜가믄 마늘 비누를 들고 다녔다. 생활개선 도 행사때도 모자라 지역행사때마다 지역홍보대사를 자청해 태안의 육쪽마늘과 함께 마늘 비누를 홍보했다. 비누를 판매하면서 바다도 볼 수 있고 꽃도 많은 태안에 놀러오라는 인사는 빼놓지 않았다.

이런 발로 뛰는 홍보 덕에 지금은 마늘 비누가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높아져 꽤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천안에서 선물을 받아서 사용해봤는데 너무 좋다고 주문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마늘축제때 상품으로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주문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점점 욕심이 생기더군요.”

조 씨는 앞으로 포기했던 마늘 샴푸와 마늘 세제 제작을 개시해 마늘 선물세트를 만들어 볼까 구상하고 있다.
여성농업인 CEO 조규숙 씨를 만날 날도 머지 않을 것 같다.

욕심 채우려면 잘 시간도 부족해
조 씨가 태안군생활개선회장을 맡은지도 2년이 다돼간다. 조 씨는 본인의 회장 경영에 몇점이나 줄까?

“글쎄요. 주변에서는 칭찬 일색이죠. 늘 잘했다고 칭찬만 들으니 실제로 제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늘 생각해요. 내가 이 칭찬을 들을만큼 잘했는지, 내 스스로 100% 만족할 만큼 열심히 했는지 늘 고민하고 반성하죠. 부족한 점 많은 저에게 늘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는 분들을 위해 지금보다 몇배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냐는 말에 조 씨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 망설임은 다른 사람들의 망설임과는 조금 다른 듯 했다.
흔히 미래 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까를 고민하느라 대답을 망설인다면 조 씨는 무엇부터 이야기할까를 두고 고민하느라 망설이는 듯했다.

“마늘 상품도 더 개발해 사업으로도 성공하고 싶어요. 생활개선회장으로서 더 많은 활동도 하고 싶고, 태안을 도와주신 분들게 보답할 만한 일도 하고 싶고요. 또 노인분들을 위해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시간도 없고 신경 쓸 일이 많아 소홀한데 정말 최선을 다해서 봉사활동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데…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요. 늘 배움에 목말라 왔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겼으니 공부에 몰두해보고 싶어요. 이왕이면 농촌생활에 도움이 되는 분야를 전공해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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