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총각 김××(33세)군이 베트남 색시와 장가를 들었다.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대대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은 대를 이을 장남이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근심거리였다. 백방으로 신부감을 찾아 보았으나, 허사였다.

국제결혼을 결심하고 현지를 방문하여 예쁘고 참한 색시와 결혼한 후, 드디어 며느리가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베트남 새색시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사방을 두리번 거리다가, 신랑을 발견하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신랑품에 안겼다. 신랑이 덜덜 떨고있는 새색시에게 두툼한 털옷을 입혀 주었다.

새색시를 태운 버스가 함박눈을 헤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새하얀 눈, 수 많은 자동차의 행렬, 고층아파트단지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새색시는 어느새 남편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몇 차례 버스를 갈아타며 마침내 마을입구에 차가 멎었다. 새하얀 눈을 밟으며 시골집에 이르자 기다리던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반갑게 맞았다. 시어머니께서 버선발로 뛰어나와 “우리 애기 고생이 많았구나!”하시며, 꼭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새색시는 신랑의 안내로 시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친지와 동네 어른들께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방안 가득히 둘러 앉은 사람들이 베트남 새색시를 신기한 듯 살펴보며, “참 예쁘다.”,“며느리 잘 얻었네!”라는 탄성으로 한동안 소란하다.

푸짐한 저녁상이 나왔다. 이것 저것 반찬을 골라주시며 많이 먹으라고 채근하시는 시어머님 성화에 못이겨 입에 잘 맞지않는 식사를 했다. 가족과 친지들의 알 수 없는 대화를 지루하게 지켜보던 새색시는 어느새 시어머니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이렇게 새색시의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6개월쯤 지난 어느날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시어머니 - “여보시유? 사장님, 안녕하시지유-?”
필자 - “예,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시어머니 - “좋은 며느리를 얻게 해 주셔서 징말 고마워유-.”
필자 - “아 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 - “근디-, 거시기 우리 아가 아뱃대유-! 글씨, 3개월 됐대먼유.”
필자 - “예, 정말 축하합니다.”

시어머니 - “그럼유-, 아가 웰마나 미운지 몰라유-, 아들이나 쑥 낳면 소원이 없겠는디-. 너무 좋응께, 동네방네 자랑할끼유-. 질 민저 사장님께 전화했지유, 뭐-.”
필자 - “아-그렇세요, 감사합니다.”

시어머니 - “요새는 유-, 아가 밥도 잘 짓고 반찬도 맹글어유-! 우리말도 지법한당께유-! 지덜 둘이두 엄청 좋아항께 됐지유 뭐-!. 근디, 우리 아는 도망칠 생각두 안쿠 잘 사는디, 테비(TV를 이름)가 그 짐말 했꾸먼 유-.”
필자 - “가족즐이 모두 잘 해주는데 왜 도망가겠어요!”

시어머니 - “징말 고맙꾸만유-, 기럼 사장님 잘 기시유-.”
필자 - “예, 안녕히 계세요.”

베트남 새색시 시집살이가 멋지게 성공하고 있다는 기뿐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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