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제결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지만 분명 수많은 농촌총각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본지가 소개하는 시리즈 ‘한익환의 결혼이야기’는 수년에 걸쳐 수많은 농촌 총각들이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의 외국 여성들과 국제결혼 하기까지의 긴 여정과 숨겨진 뒷얘기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전남 여수에서 뱃길따라 2시간, 금호도 유송리가 문××(40세)씨의 집이다. 여수 선창가 허름한 식당에서 문군을 처음 만났다. 부모님은 생존해 계시고,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군대를 제대하고 객지로 떠돌다가 6년전 고향에 돌아와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살고 있다고 했다.

3년전에 중국 조선족과 결혼했는데, 얼마 살지 못하고 야밤도주를 하는 바람에 이혼재판을 하는데 너무 힘들었으며, 1년만에 겨우 이혼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소를 키워 보려 축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농토가 몇천평 되어 먹고 사는데는 걱정없고, 뭘하든 처자식 밥은 안굶길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 치면서 자신에 대하여 상세히 소개했다.

“캄보디아각시는 안도망 갑뎌-?.”라고 질문을 했다.“신랑이 잘 해주는데 왜 도망갑니까? 한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도망을 가지요.”라는 대답과 함께 캄보디아색시의 환경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를 했다.“말씀을 듣고보니 안심이 된당게요. 캄보디아로 결정하겠습니다요.” 문씨와 대화 나누는 동안 순박하고 성실한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문씨와 함께 우리 일행은 푸놈펜에 도착하여 맞선을 보고 참한 색시를 배우자로 맞아 결혼식을 치렀다. 중국인과의 결혼에 경험이 있어서 인지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 공항의 이별을 나누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 후, 캄보디아로부터 결혼증명 서류가 도착하여, 결혼서류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문군에게 등기우편으로 발송했다. 문군으로부터 결혼서류를 잘 받았다며 내일 면사무소에 혼인신고를 하러 가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문씨와 전화통화가 끝나자마자 캄보디아로부터 문씨의 색시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황당한 연락을 받았다. 이어 캄보디아병원의“사망확인서”가 팩스로 도착했다.

문씨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지금 내려갈테니 여수에서 만나자고 했다. 무슨일 때문에 내려오느냐는 물음에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대답하고 이내 여수를 향해 달렸다. 문군을 만나면 어떻게 이 엄청난 사실을 말 해야 할까 고심하며 여수에 도착했다.

약속장소에 나와 기다리던 문씨를 승용차에 태우고 한적한 장소로 이동한 후, “자네 캄보디아 색시가 사망했다네.”라고 말하며, “사망확인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며 막무가네로 떼를 썼다.

“자네 색시가 멀리 일하러 가신 어머님께 한국으로 시집간다고 작별인사를 드리러 오토바이를 타고가다가 커브길을 돌아오는 대형트럭에 깔려 사망했다”는 사망경위를 듣고는 긴 한숨을 내 쉬었다.“난 이제 어떡한다요, 어떡하면 좋다요.”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동인 침묵이 흐른 뒤, “세번 장가들라는 팔자랑게요! 새로 장가갈라요.”라고 하면서 비장한 결심을 토로했다.
문씨가 황당한 사건으로 캄보디아를 2번 방문한다는 사연을 비밀에 붙이고 2명의 신랑과 함께 프놈펜을 방문했다.
문씨는 방문기간 내내 별로 말없이 과묵하고 침착하게 행동했다. 1달만에 2번째 장가가는 심정이야 오죽하랴!! 순박한 시골여성을 배우자로 맞아 결혼식을 올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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