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국회의원 (민주노동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식협상이 지난 12일에 끝나고 19일부터 워싱턴에서 고위급 협의가 진행된다. 한미FTA 협상을 `고위급 담판`을 통해 행정부 독단으로 타결하려는 시도는 국회와 헌법을 무시한 월권행위로 즉시 고위급 협의를 중단해야 한다.

100여 법제 개정·폐지 동의 없어

정부는 고위급 회담 전에 한미FTA 협상의 마지노선은 물론 타결과정에서 개정이나 폐지가 우려되는 법률과 제도의 목록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에 대한 협상을 해도 좋은지 동의를 구해야 한다. 동의과정 없이 독단으로 회담을 진행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이자 위헌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8차 협상이 끝난 시점부터 19일 전후까지 1주일간 굵직굵직한 쟁점들을 일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9개월간 풀지 못한 사안을 단 며칠간 타결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전문가그룹과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한미FTA 협상의제와 관련된 국내 법률이 169개나 된다. 8차 협상을 통해 전자상거래, 정부조달, 금융분야 등에서 일부 법제와 상충하는 협상쟁점이 제외되긴 했지만 여전히 100개 이상의 제도가 관련돼 있다. 이를 어떻게 며칠간의 고위급 회담에서 다 다루고 타결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미국, 법개정 관련협상은 의회가 통제

미국은 협상내용이 단 하나라도 자국법령의 개정·폐지와 관련될 경우 반드시 협상을 중단하고 의회의 의견을 물어 처리해왔다. 더구나 미국 협상단은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자국이 불리한 의제의 경우 사사건건 법개정에 대한 의회의 요구를 앞세워 `협상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국 협상단은 미국의회의 강경한 태도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한국 국회에는 형식적인 보고만 할뿐이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 요구를 반영하려는 노력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식이다. 과연 어느 나라 협상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협상과정을 보면, 협상재량권이 제한된 채 의회의 확실한 통제를 받는 미국 협상단이 초헌법적인 재량권을 가진 한국 협상단의 `고무줄 협상기준`을 압박해 자국의 요구를 관철하는 식이다. 정부 독단으로 벌이는 고위급간 담판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협상과 연관된 법률 목록 공개해야

고위급 회담의 주요의제 어느 것 하나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부 독단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은 없다.
미국이 강요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 관련 세제개편 여부는 미국과의 양자협상으로 풀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전체 세수 규모나 그 필요성에 대한 고려를 전제로, 국회를 통해 국민의견 수렴과 합의과정을 거쳐야 할 사안이다.
쌀, 쇠고기 등 농산물 민감품목의 규모와 관세감축 수준 문제도 미국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국내 농업과 농촌의 현실, 한미FTA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대책을 수립하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농산물 협상의 경우 `비공개 사안`이라며 밀실에서 하나하나 내주고 있다.

국회가 정부 독단행위 제어해야
책임은 국회에도 있다. 한미FTA 특위가 구성됐지만 주도면밀한 검증활동은 찾아볼 수 없고 형식적인 질의응답만이 난무한다. 특히 협상종료시한을 앞둔 막바지 7차, 8차 협상을 전후해서는 특위 30명 의원 가운데 기껏 10명 정도가 질의했을 뿐이다.

미국과의 협상을 이유로 국내 제도와 법률, 정책을 바꾸려는 행정부의 독단과 월권행위에 제동을 걸 곳은 바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밖에 없다. 국회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정부를 붙잡아두지 않으면 차라리 국민의 대표라는 의원직을 내놔야 할 것이다.

협상단도 졸속, 밀실, 사대 협상의 최종판이랄 수 있는 한미 고위급 회담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미국 입장만 대변하는 협상단, 이를 수수방관하는 국회는 한미FTA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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