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재돈 (농민연합 상임대표,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장)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일 에이티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 하는 농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농업도 시장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농업 연간 총생산액이 22조원인데 16조원이 지원되고 있다. 농업생산액의 42%를 정부투자로 메우는 정책에 대해 농민이 농정불신을 얘기할 수 있는가”라며 농민단체 대표들은 앉혀놓고 ‘훈계’를 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미국 쇠고기 수입이 관련이 없는데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미 FTA에서 핵심사안이 쇠고기 시장개방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노 대통령이야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농민단체 대표들에게 호소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노 후보는 본인이 농민의 아들이고, 본인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농민이라고 강변했다. “바람불면 진영단감 떨어질까 걱정한다”는 노 후보는 그런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후보는 “농민은 지난 40년간 숨은 공로자이면서 최대 피해자이고, 전통적 가치관으로 보면 무조건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한껏 추켜세운 뒤 ‘국가존재이유’를 들어 “당연히 지켜야하는 분야가 붕괴되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국가지도자의 농업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기까지 했다.

노 대통령의 후보시절 농정철학은 유통기한 5년을 채우지 못한 채 변질했다. 결국 스스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노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농업은 경쟁력 없는 산업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쟁력 없으면 버리고 경쟁력 있는 품목과 농가만으로 시장개방에 대응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경쟁력이 모든 것’이라면, 우리 군대가 경쟁력 없다고 외국용병에게 국방을 맡기고 서울 지하철이 적자라고 운행을 중단할 것인가. 언어도단일 뿐이다.

대통령은 식량이든 석유든 언제든지 사올 시장만 확보하면 된다는 식의 발언으로 ‘식량안보 논리의 허구’를 들췄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우리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농업, 농촌의 가치를 두고도 노 대통령은 천박한 인식을 드러냈다. 정부(농림부) 통계에 따르면 농업생산과 관련산업을 합친 ‘농산업(agribusiness)’ 전체 2004년 부가가치가 76조3천억 원으로 국내 총 부가가치의 11.0%를 차지하고 농산업 종사자는 380만6천 명으로 경제활동 인구 취업자의 16.9% 수준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각종 통계에 따르면 농업의 공익기능, 다원가치는 대략 50조 원에 달한다. 오히려 대통령이 농산물 생산액만 거론하는 까닭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헌법은 국민들이 요구하면 고칠 수 있지만 한미 FTA는 미국 동의 없이 수정할 수도 없다. 한미 FTA로 무너진 농업은 다음 정권이 되살리려고 해도 살릴 수 없다. 이런 농민들의 피맺힌 절규는 외면하고 미국식 ‘경쟁력’만 앞세우는 대통령이 농민단체 대표들, 350만 농민들을 꾸짖을 자격이 있는가.

훈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농민들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다. 정녕 퇴출돼야 할 대상은 농업이 아니라 노 대통령 자신임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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