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 노후주택 고쳐주는 ‘농촌건축학회’

지난 5일 찾은 충남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 마을회관에는 ‘2009 농어촌 노후주택 고쳐주기 대학생 자원봉사 활동’이라고 써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약 5분정도 떨어진 공주시 이인면 반송리 안원생(77) 할머니 댁으로 들어서자 노후된 집을 고쳐주고 있는 대학생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학생은 ‘쿵쿵’ 해머로 바닥을 내려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해마다 장마가 되면 물이 넘치는 집의 배수로를 터놓기 위해서란다.

또 한쪽에서는 여학생들이 외벽에 황토를 바르는 미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노란 조끼를 입은 이혜인(24·홍익대 실내건축학과4)씨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따가운 햇볕 속에서 일한 지 벌써 3일째다.

얼굴은 까맣게 타있었다. 울퉁불퉁한 외벽에 황토로 미장을 자연스럽게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한 친구는 “혜인이는 미장일이 체질”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에 힘이 더 솟는지 이씨는 내친 김에 사다리까지 받쳐놓고 황토를 발랐다. ‘우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농어촌에서 살고 있는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의 주거복지 향상을 위해 지난 2007년부터 3년째 진행 중인 노후주택 고쳐주기 사업 현장의 모습이다.

노후주택 고쳐주기 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 산하의 다솜둥지복지재단 주관으로 한국농촌건축학회와 함께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추진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마사회특별적립금을 통해 매년 2억원 안팎의 사업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이왕기(57·목원대 건축공학전공) 교수가 이끄는 이 마을에는 목원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학생 27명이 모여 4개의 가옥을 나눠서 고쳐주고 있었다. 기자가 찾은 안원생 할머니의 집은 지은 지 50년이 넘어 매우 낡은 상태였다.

안원생 할머니는 “그동안 비가 올 때면 마당에 물이 잘 빠지지 않아 화장실 조차 가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면서 “손주같은 아이들이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니 고마우면서 한켠으로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노후된 집에서 할머니 혼자 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면서 “이 마을을 노후주택 보수공사 대상 마을로 선정하게 된 것도 안 할머니 집의 영향이 컷다”고 설명했다.
충남의 경우 5개 마을을 추천 받은 뒤, 예비조사를 통해 타당성 검토를 거치고 마을 이장과 만나 최종으로 1개 마을을 선택하게 된다.

이어 이 교수는 “3년째 농촌주택을 보수하고 있지만 매번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 중장비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마당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부엌이나 안방을 보수하는 일에 들어가는 모든 자재는 마을입구에서 손으로 들어다 날라야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대학생들이 흘린 땀의 결정체였다.

이혜인씨는 “노후주택 고치기에 2년째 참여하고 있는데 어떤 곳은 벽지를 뜯으니 하늘이 보일정도로 낡은 집도 있었다”면서 “솔직히 땀을 흘릴 땐 힘들지만 흘린땀을 식힐 땐 그만큼의 보람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10일간의 열정을 쏟아붓는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활을 할까. 대학생들이 머무는 숙소는 공주지 이인면 복룡리 마을회관으로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은 불편함 없이 지낸다고 했다.

송연아(26·목원대 건축학과 대학원)씨는 “학생들은 오전 6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펼치지만 이마저도 즐기고 있다”면서 “대학생들의 젊은 패기와 봉사정신이 농촌에 계신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보수가 끝난 뒤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이런 희망의 열기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올해 3년째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최 헌(26·목원대 건축학전공4)씨는 “선배들에게 수리의 노하우를 배웠으니, 이제는 내가 후배들에게 알려줄 차례”라며 “작은 힘이지만 조금씩 보태 힘들게 사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농식품부에서도 이런 모습을 두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자원봉사에 동참하고 있다. 기자가 다녀간 다음 날 농림수산식품부과 한국농어촌공사 직원 7명이 동참해 부엌 수리를 하기 위해 하루종일 망치질과 못질을 하는 등 일손을 보탰다고 이 교수팀은 전해왔다.

이에 앞서 지난 달 18일에는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이 충북 청원군 미원면 방촌마을을 직접 찾아 부엌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외벽에 페인트도 직접 칠하면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장 장관은 “여유있는 사람들이 기부금을 모아 이런 사업을 전개해 독거노인들의 노후생활을 조금 더 안락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며 “앞으로 우리 직원들도 기부하고 예산도 지원하면서 우리나라 전체로 이런 사업이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 이왕기 목원대학교 건축공학전공 교수


“봉사하는 젊은이들이 일하며 감사하는 마음 배워”

“우리 대학생들 가슴 깊숙한 곳에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지난 5일 충남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에서 만난 이왕기(사진) 목원대학교 교수는 “3년째 ‘농어촌 노후주택 고쳐주기’ 현장을 이끌면서 대학생들의 또 다른 면모를 봤다”면서 운을 뗐다.
이 교수는 “요즘 대학생들이 개인주의적이고 버릇없다는 말이 많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특별히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면서 “그러나 3년간 노후주택 고쳐주기 현장에서 대학생들과 지내보니 그것이 틀린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들이 따뜻한 마음을 보여줄 만한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어떤 다문화가정에서는 집이 워낙 노후가 돼 산모가 아이를 낳고 화장실도 가기 힘든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서 “노후주택 고쳐주기 봉사활동을 3년동안 하면서 눈물, 콧물 다 짜낼 정도로 어려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가슴 찡한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번은 열심히 일하던 한 학생이 저한테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됐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알게 해줘서 그렇다는 거예요. 저도 가슴이 뭉클했지요. 아이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교수는 “지금 농촌에는 젊은 층이 부족한데 비록 잠깐이지만 농촌에 젊은이들이 북적이면서 마을에도 활력이 생기고, 학생들도 농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삶의 현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들이 꿀맛같은 방학기간에 여행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많은 계획을 제쳐두고 땡볕에서 보름 가까이 일을 하는 자체가 인성적으로 많은 교육이 되고 있다”면서 “집을 다 고쳐준 후 각자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에서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얻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처음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겁도 많이 났다”면서 “3년을 해도 힘든 일이긴 하지만 한 번 쉬면 그 다음해에는 절대 다시 못할 것 같으니 계속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노후주택 고쳐주기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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