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범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

풍성해진다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지만 농민들의 마음에 안타까움과 함께 서글픔이 밀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직 황금들녘에는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벼들이 스스로 자태를 뽐내며 하나의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생산비보다 못한 현실에 한숨과 좌절뿐이고, 일상처럼 반복되는 현실에 농업·농촌에는 어느덧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절망과 도시로 떠나지 못했던 젊은 날의 설움이 묻어납니다.
둥근달 풍성한 들녘에 우리의 희망의 불씨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국민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먹을거리 생산에 대한 의무감을 지닌 채 언젠가 나아지겠지, 조금만 견뎌내면 지금보다는 났겠지 마음속에 되새김질은 해온 세월에 어느덧 검은머리 귀밑에 겨울 서리발 세워지듯 삐죽삐줏 흰머리가 솟아났습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내일은 좀 나을 것이라는 기대에 정부가 펼치는 정책에 순응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손해를 감래하고 지내온 세월이지만, 농업·농촌이 경쟁력 없는 사양 산업 운운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는 사람인양 치부해 버리는 현실이 슬플 뿐입니다.
지금의 농업·농촌은 대내외적으로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WTO출범 이후 농산물 수입개방의 확대, 자유무역 협정 추진 등 시장개방 압력이 거세지고, 대내적으로 농가부채 증가, 고령화 및 후계농업인력 부족, 생산비도 채 건지기 힘든 농산물 가격에 내년엔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지, 어느 한품목도 안심하고 농사지을 것이 없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쌀 문제 또한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현재 지역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09‘년산 벼 매입가격 결정현황을 살펴보면 농협매입가격이 작년대비 평균 12%, 민간 RPC 경우는 많게는 20%정도 하락한 가격으로 가격결정이 이루어 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쌀 재고량은 주체할 수 없이 쌓여 전체 물량의 수매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농촌지도자회를 비롯한 농민단체는 올 상반기 재고량 증가와 소비둔화로 인하여 쌀 값 하락을 예견하고 정부가 직접 나서 쌀 매입하고 시장으로부터 철저하게 격리시켜 줄 것을 요구해 왔지만 계속해서 민간과 시장에 책임을 떠 넘겨온 정부의 무책임하고 소극적인 자세가 쌀 대란을 현실로 만들어 냈으며 산지쌀값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가 내놓은 민간부문의 수탁판매 우대 지원 등 매입량 확대를 위해 인센티브를 확대해 매입량을 늘어나도록 하는 방향은 수급조절을 위한 대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산지의 쌀대란, 쌀값대란을 위한 대책이 될 수 없으며 극도의 심리적불안감으로 쌀값이 폭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자율적 매입 장려로 쌀값이 회복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쌀과 농업의 문제는 결코 농업인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올해 계속되는 쌀값 폭락은 지금 이 순간에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농촌의 고령화와 농가경영비 상승으로 인하여 생산비도 건질 수 없는 상황은 결국 농가들의 자립역량을 무너뜨리고 영농 포기사태 속출로 이어져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바와 같이 모든 국민의 문제가 되는 것이요, 우리 미래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005년 이후 4년만에 역계절진폭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가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 나서야 할 시기입니다. 이 시기만 지나면 재고물량이 털어지고 가격보전이 될 것이라는, 농가생산비 보장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사고에서 벗어나 공공비축물량 매입확대와 농가생산비보장 방안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젠 매년 반복되는 쌀 문제 해결을 위해 단기적 처방인 아닌 내년, 내후년을 대비한 근원적 대책마련에 심혈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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