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이슬람 역사의 어머니이자 최초의 신도

  
 
  
 
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카디자(Kadidja)’는 아랍세계에서 최고로 번화한 도시 ‘메카’에서도 가장 화려한 저택과 최대 규모의 ‘캐러번’(사막지역 무역상들의 무리)을 자랑하는 거부(巨富)였다. 주민들은 그녀를 ‘타히나(Tahinah;정직한 사람)’라고 불렀다.

‘아사드’ 부족의 큐엘리드의 딸로 태어난 카디자는 두 번이나 결혼했었다. 첫 남편에게서 아들 ‘힌드’와 두 번째 남편에게서 딸 ‘힌드’를 각각 낳았다(이채롭게도 남편이 다른 두 아이의 이름이 같았다).

그녀는 아라비아 반도 상업의 중심지이자 모든 순례자와 행상들이 거쳐 가는 ‘메카’에서 잔뼈가 굵은 여인으로 사업수완이 대단했다. 미망인의 몸으로 사막 무역행상에 뛰어들어 엄청난 돈을 모았던 것이다.

특별한 종 ‘무함마드’
‘새로 들어 온 종은 좀 특별해 보여.’
카디자는 자신의 호화저택 발코니에 앉아 멀리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는 ‘무함마드’라는 청년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실하고 잘생긴 무함마드는 이제 이십대 중반에 불과했으나 그 나이 또래의 청년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위엄과 기품이 배어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미남인걸! 눈이 크고 그윽한데다 지성으로 빛나고 있어.’
죽은 두 남편들과는 너무도 다른 무엇인가를 갖추고 있는 무함마드. 그에게 부족한 것이라곤 돈 뿐이었다.
‘하지만 저 나이에 부자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겠어?’
무함마드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카디자는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입술과 반짝이는 이는 루비상자에 담긴 진주와 같았다. 음성은 맑고 달콤하며 아주 천천히 말하는 습성 때문에 낱말 하나하나가 또렷이 들렸다. 웬만한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무함마드는 보름달처럼 아름다운 사내였다> (하미둘라 作 이슬람의 예언자)
‘저 잘난 녀석을 내 남편으로 삼을 거야.’ 카디자는 결심했다.

구혼
캐러번을 따라 나선 무함마드에게 카디자의 노예 ‘마이사라트’가 은밀히 접근했다.
“이봐요 무함마드, 카디자 같이 돈 많고 매력적인 귀부인과 결혼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당신처럼 매력 있는 남자라면 가능할 텐데….”
약간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말했다.

“만일 카디자가 원한다면 당신은 결혼하겠어요?”
“원 농담도… 푸훗.” 무함마드는 단지 웃을 따름이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카디자는 이방 여인인 ‘누파이샤’를 무함마드에게 보냈다.

“무함마드, 결혼할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 당신은 왜 결혼을 안 해요? 당신을 짝사랑하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혼자 살죠?”
“우선 나는… 가난하오. 게다가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내가 여덟 살 때부터 나를 키워 준 숙부님과 그 가족을 부양해야 하오.”

묵묵히 듣고 있던 누파이샤는 “우리 주인 카디자 어때요? 그녀의 재산이라면 당신 숙부가족 이 천 명이라도 당장 가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텐데….”
“…….”

“무함마드 당신만 좋다면 주인님은 당장이라도 당신과 결혼할 의향이 있답니다.”
그 날 저녁, 무함마드는 카디자를 만났고 마이사라트와 누파이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카디자님. 당신 부족의 원로들이 이 결혼을 과연 승낙하겠어요?”
카디자는 빙그레 웃었다.
“무함마드. 내 수완을 아직 모른단 말인가요?”

현숙한 아내
그러나 그녀의 재정적 도움을 받고 있었던 족장 ‘이븐 아사드’의 반대는 뜻밖으로 완강했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가족과 자신의 가족 어른들을 모아 족장을 방문했고 큰 연회를 열었다. 카디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족장에게 연거푸 술을 권하게 했다. 곤드레만드레 취해 곯아떨어진 족장이 깨어났을 때 카디자와 무함마드는 이미 결혼식을 마쳐버렸다.

“어머나, 기억 못하세요. 저희 결혼식을 허락하셨잖아요? 여기 증인들도 이렇게 많이 있는데….”
모두가 그렇다는데 족장도 도리가 없었다.

카디자는 화통하고 지혜로웠고 남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으나 무함마드를 존중하며 헌신적으로 내조했다. 우선 무함마드의 숙부와 그 가족, 친구 심지어 무함마드 가족의 노예들에게까지 은혜를 베풀었다. 카디자 덕에 무함마드의 가족들은 부자가 됐고 노예들은 해방됐다.

카디자와 무함마드 부부는 절제되고 금욕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무함마드의 종교적 성향을 카디자가 존중했기 때문이다.

일에서 해방된 무함마드는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신의 뜻을 알기 위해 골몰했고 깊은 종교적 성찰 속에서 신비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이슬람 탄생
무함마드가 40세가 된 서기 610년, 히라 산맥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명상에 빠진 무함마드에게 대천사 ‘지브릴(성경의 가브리엘)’이 나타났다.(코란 97장 1~5절) 천사는 성구가 적힌 비단 천을 내보이며 창조주(알라)의 말씀을 음송하기 시작했다.

대천사는 무함마드에게 ‘위대한 알라’의 천지창조와 그의 진리, 그의 사랑과 자비, 계율, 알라는 유일한 신이라는 것, 장차 다가올 세상의 종말 등 신께서 인간에게 전할 모든 말씀을 계시했다. 무함마드는 알라에 의해 세상을 구할 ‘예언자’로 선택된 것이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온 무함마드는 자신의 경험을 반신반의했다.
꿈과 생시의 경계에서 두려움과 경외감, 압도감과 중압감이 뒤범벅이 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 온 무함마드는 자신이 겪은 일을 카디자에게 말했다.

“카디자, 내가 겪은 일이 성스런 신의 목소리인지, 사람을 홀리는 악마의 목소리인지 모르겠소. 정말 신비한 경험이었소.”
전설에 의하면, 카디자는 무함마드에게 “당신 앞에 천사가 나타났을 때 나를 불러 달라”고 했다. 무함마드 앞에 천사가 나타나자 카디자는 옷을 모두 벗었다. 그러자 천사는 사라졌고, 카디자는 무함마드에게 “악마라면 여자가 옷을 벗었어도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사라진 걸 보면 음란한 것을 못 견디는 천사가 틀림없다”며 확신을 주었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 종교의 최초의 신자가 되었다. 이슬람교의 탄생이다.
중동 전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서부, ~스탄 으로 불리는 중앙아시아의 모든 국가, 동유럽 일부, 수리난 등 중미 일부와 북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에 15억의 신도를 자랑하는 세계 종교 ‘이슬람’은 이렇게 탄생했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와의 20년 결혼생활 동안 안락한 인생을 포기하고 메카에서의 추방, 좌절, 재기, 전쟁의 패배, 다시 재기, 기반 구축, 세력 확장 등 이슬람 탄생의 어머니 역할을 해냈다. 무함마드는 생전에 이미 전 아라비아 지역을 점령했고 그의 종교를 전파했다.

인류 역사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중대한 사건인 이슬람의 태동은 무함마드라는 원석을 발견하고 다듬어 크고 찬연한 다이아몬드로 다듬어 낸 그의 아내 카디자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무슬림들의 영원한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다.
무함마드에게는 모두 12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카디자가 죽기까지는 다른 아내들을 취하지 않았다.

왜 무함마드인가?
우리에게는 ‘마호메트’가 익숙하다. 그러나 그 발음은 서양인의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지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를 ‘마호메트’로 부르는 것에 대해 무척 불쾌하게 생각 한다고 한다.

▷수니파와 시아파
두 부부는 네 아들과 세 딸을 두었으나 ‘파티마’라는 딸만 남기고 모두 요절하는 불행을 겪었다. 무함마드가 ‘칼리프’라고 하는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이슬람은 혼란에 빠졌다.

유일한 혈육 파티마의 남편이자 무함마드의 조카인 ‘알리’가 칼리프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시아파’이고, 혈육이 아니더라도 신앙이 깊고 도덕적이며 리더십을 갖춘 능력 있는 무슬림이면 누구나 후계가 가능하다며 보편성을 강조했던 것이 ‘수니파’로 지금까지도 이라크 등 아랍사회에서 매일처럼 양 세력 간 유혈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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