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상이 진통 끝에 마무리된데 이어 정부는 곧바로 EU와의 FTA 협상에 돌입했다. 이른바 ‘FTA 시대’가 시작됐다며 설왕설래하는 사회 분위기다. 그러나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그랬듯이 EU와의 협상에서도 농업분야의 개방압력이 거셀 것으로 예상돼 정부의 협상 진행상황에 따라 이번에도 농업계가 협상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양돈업계는 협상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시작했다.

지금도 EU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 양이 5만3천톤에 이르고 수입시장 점유율만 70%에 달해 국내 양돈업계가 몰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EU 회원국가들의 농업분야 주력 품목인 위스키, 와인 등 주류와 낙농품의 피해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마무리 돼 가는 한미FTA 협상과 그에 따른 농업분야의 과제는 무엇이고, 세계 최대 무역시장인 EU와 새로 시작하는 FTA 협상을 짚어봤다.[편집자 주]


* 끝나가는 한미FTA

국회 비준만 남겨 둔 한미FTA

지난 4월 2일 공식 타결이 발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현재 국회 비준의 절차를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11개 국책연구기관(이하 대외연)이 발표한 농업분야 향후 분석 보고서의 피해액 축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는 대외연과 각 농업인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농업분야 피해 분석과 한미FTA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에서는 한미FTA의 추진에 대한 절차적 문제점과 그동안 정부가 협상에 대한 전략노출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던 내용들에 대한 검증, 대외연이 발표한 농업분야 피해 분석 보고서의 문제점 등이 파헤쳐졌다.

대외연은 분석 보고서에서 농업분야는 향후 15년간 대미수입액이 연평균 3억7천만 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른 생산감소액, 곧 농업분야 피해액은 연평균 6천698억 원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열린 국회 농해수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농경연 최세균 연구위원은 “이번 분석자료에서는 연계산업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다”며 “직접적인 생산물에 대한 1차 조사가 끝난 상태로 부수적인 연계산업의 피해는 따로 추가해서 조사해야 한다”고 증언을 한 바 있다. 최 연구위원은 대외연의 농업분야 분석 보고서의 책임연구위원이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쇠고기에 대해 대외연은 40%의 관세가 15년에 걸쳐 철폐되면서 수입가격 하락에 따른 생산액 피해로 이행 초기년도인 2009년에 205억 원, 5년차 671억 원, 10년차 2천811억 원, 최종년도인 2023년에 3천147억 원 감소를 예상했다.

이에 대해 한우협회 남호경 회장은 “벌써부터 산지의 송아지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며 “대외연이 제시한 피해규모 추정액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품목별로 봤을 때 감귤의 경우 정부는 계절관세의 도입으로 제주도민의 피해를 최소화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제주도민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청문회 참고인으로 참석한 제주대학교 강지용 교수는 “감귤은 제주도민의 목숨과 같은 절박한 산업”이라며 “1월에 결정된 계절관세 방침을 제주도민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없다가 타결 하루 전에 와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통상독재에 절규했다.

정부는 협상의 성과물로 세이프가드의 도입과 TRQ 물량 확보 등을 내놓았다. 또한 농업분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농림부는 협상에 돌입하기 1개월 전부터 ‘우리 농업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양허 품목의 최소화’를 목표로 하는 내부 문건을 작성해 장관의 결재까지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농림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와 달리 처음부터 ‘전면개방’을 목표로 협상에 임했다는 뜻으로 농림부마저 농업인을 버렸다는 지탄을 면치 못하는 대목이다.

이밖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정부는 미산 쇠고기의 위해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재개했다. 또 국민들에게는 안전하다고 미국의 입장만을 대변했다. 이같은 사실은 정부가 공개를 거부한 OIE보고서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개별 입수해 공개함으로서 밝혀졌다.

한미FTA의 파장은 EU와의 협상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최근 협상이 개시된 EU와의 자유무역협정에서도 미국과의 협상결과를 따라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시작된 한·EU FTA

세계 최대 시장 EU와 FTA 협상 개시

지난 7일부터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돌입한 정부는 한미 FTA에 못지않은 기대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미국과의 FTA 협상과는 달리 비교적 순조로울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EU가 27개 나라의 연합체여서 민감한 분야의 경우 회원국마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협상 타결까지는 그리 녹녹치 않은 과정을 거칠 전망이다. 최소한 1년 이상은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양국은 11일까지 진행되는 1차 협상에서 협상 추진일정, 양허안 교환시기 등 협상의 기본방향을 확정할 계획이며 상품이나 서비스·투자 등에서는 실질적인 협상도 벌일 예정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5∼6회의 협상을 열어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협상이 타결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미 FTA때 민감한 문제였던 투자자-국가간 소송제(ISD)를 비롯한 투자보장이나 방송 등 문화 분야의 개방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고, 농산물 개방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하기는 하지만 양국이 높은 수준의 FTA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일단 양국은 공산품의 경우 최대한 단기간에 예외없는 관세철폐를 추진하는 등 상품 무역의 자유화뿐 아니라 서비스, 경쟁,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투명성 등 전분야를 포괄하는 FTA를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EU는 자동차 기술표준이나 환경기준, 기능성화장품 심사 및 승인 절차, 약가 산정의 투명성, 위생·검역(SPS)의 기준, 지적재산권 보호 등에 그동안 불만을 표시해왔다. 아울러 유통, 운송, 통신, 금융, 법률 등 높은 경쟁력을 보유한 전문직 서비스 시장의 개방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EU는 농산물의 경우 우리와 마찬가지로 민감품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비해 부담은 덜하지만 버터나 치즈 등 유가공 제품과 와인, 위스키 등 주류를 비롯한 일부는 개방 요구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 7일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한·EU FTA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지난 칠레, 멕시코와의 FTA에서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가금육, 유제품, 계란, 과일, 채소, 절화류, 감자 등을 개방에서 제외할 정도 농축산물을 주요한 민감품목으로 삼고 있다.

신재근 농협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2005년에 EU와의 농축산물 교역에서 전체 농축산물 무역 적자의 15%에 해당하는 12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며 “특히 EU는 육류, 낙농품, 과일 등에서 우리나라보다 가격 경쟁력이 매우 커 한·EU FTA가 체결되면 이들 품목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그는 “EU의 경우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서 상당수 농산물을 관세 철폐 대상에 넣지 않았다”며 “우리도 주요 민감품목을 제외하는 등 협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U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아우르는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2005년 EU 회원국(25개국)의 국내총생산은 13조5천억달러로 12조5천억달러인 미국보다 1조달러가 많은 1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와의 교역규모는 794억달러로 전체 교역의 12.5%를 차지하면서 중국(1천181억달러)에 이어 2위였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규모는 405억달러로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단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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