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잔다르크’… 온몸으로 왕국 지켜내

  
 
  
 
‘수리요타이’는 태국 아요타야 시대의 왕비로 타이 민족 불세출의 여걸이다. 아요타야 왕국은 1350~1767년까지 태국을 지배하며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강력한 왕조다. 우리나라 고려 말과 조선 영조 때까지의 장장 400년 세월을 군림한, 태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왕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요타야 왕국의 주변에는 버마(지금의 미얀마), 크메르 제국(지금의 캄보디아), 베트남민족의 레왕조(黎王朝) 등 강력한 세력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수리요타이가 살았던 1500년대 초·중기에 버마 왕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동남아시아 최강의 나라였으며 버마 왕도 상당히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깨진 첫사랑
수리요타이는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소녀였다.
아요타야 왕국은 가장 높은 대왕(大王)이 각 지역의 소왕(또는 제후)를 임명해 그들로 하여금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이른바 ‘봉건제’ 체제로 다스려졌다.
수리요타이의 아버지는 왕족인 ‘스리수렌’으로 지방 유력자였던 까닭에 그녀의 어린 시절은 나무랄 것 없이 유복했다.

수줍고 내성적이었던 수리요타이는 똑똑하고 잘생긴 아버지 휘하의 장교 ‘쿤 피란토라뎁’과 남몰래 사랑을 나누었고 그에게 시집가기를 바라마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아요타야 왕국의 복잡한 사정은 수리요타이의 소박한 꿈을 앗아가 버리고 만다.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리요타이를 본 아요타야의 제왕 ‘라마티보디 2세’가 수리요타이를 불렀던 것이다.
“너는 참으로 아름답고 현숙해 보이는 구나. 마침 내 아들 ‘티엔라차’왕자가 결혼 적령기이고 왕자도 너를 싫어하는 것 같지 않으니 너를 내 며느리로 삼고 싶구나”
수리요타이의 아버지와 일족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대왕의 사돈이 된다면 우리 가문은 더 할 나위 없이 강해진다. 수리요타이야 고맙다!’
그러나 수리요타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버지는 그녀의 어두운 얼굴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수리요타이의 첫사랑 피란토라뎁을 무척 아꼈고 사위 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왕의 청혼이 들어온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네가 거절하면 우리 가문이 어떤 환란을 겪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끈질기게 수리요타이를 설득했다. 마침내 수리요타이는 왕자비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첫사랑은 이렇게 깨진다.

현명한 아내 수리요타이
1529년, 라마티보디 왕이 사망했다. 왕위는 그의 아들이자 수리요타이의 남편 ‘티엔라차’의 큰 형인 ‘아티타야’가 이었다.
그러나 아티타야는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돼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된다.
그는 죽기 직전 야심만만하고 호전적인 동생 ‘차이라차티랏’을 불렀다.
차이라차티랏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이방원(태종)이나 세조 같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약속해다오. 내 아들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고 그에게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그래야만 낸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 ”부처님 앞에 약속 하겠습니다“ ‘차이라차티랏’은 그렇게 맹세했다. 그러나 수리요타이도, 그녀의 남편 티엔라차도 차이라차티랏의 야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왕세자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차이라차티랏은 아티타야 왕이 죽자 곧바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강력한 이웃나라 버마와 나라 안의 간신배들을 몰아내려면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아티타야 왕의 왕세자를 목 베어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정의감에 넘치던 수리요타이의 남편 티엔라차는 격렬히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 수리요타이는 남편에게 한발 물러날 것을 권했다. “제가 생각해도 차이라차티랏 왕의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닌 듯합니다. 지금 왕궁 안에는 왕위를 찬탈하려는 무리들이 숨을 죽이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강력한 사람이 왕권을 쥐고 우선은 내치에 전력해야 합니다. 선왕과 왕세자가 불쌍하지만 큰 틀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수리요타이의 현명한 조언이었다.

티엔라차는 한발 물러섰고 형의 왕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차이라차티랏은 왕위에 오른 뒤에도 티엔라차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왕이 ‘유통’ 가문의 절세미녀 ‘수다찬’을 후궁으로 삼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유통가문은 태국 옛 왕조의 왕가(王家)로 조선 초기 왕이 옛 왕조인 고려 왕(王)씨 가문의 여자를 후궁으로 삼은 격이다.

피바람이 부는 왕궁
차이라차티랏왕은 호전적인 사람으로 버마 점령을 결심하고 전군을 소집했다.
그는 대규모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전선으로 향했다. 왕이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후궁 수다찬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녀는 왕의 전속 악사 ‘스리텝’이 유통가문 사람임을 알고는 그를 유혹했다.

그와 공공연히 동침했고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자가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밀림으로 던져버렸다.
전쟁에서 돌아 온 차이라차티랏 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수다찬의 몸만 탐닉하는 것이었다.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수다찬은 측근을 시켜 왕의 음료수에 독약을 탔다.

왕은 몸의 모든 구멍으로 피를 뿜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죽어가는 왕에게 수다찬은 이렇게 속삭였다. “왕위는 우리 유통가문의 핏줄이 이어야해…후후후”

한편, 궁중의 측근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은 수리요타이는 재빨리 남편으로 하여금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게 했다. 남편을 출가시킨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다찬과 스리텝은 왕위계승자인 티엔라차(수리요타이의 남편)에게 독살의 혐의를 덮어 씌어 그를 제거하고자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그가 이미 출가했다는 말을 들은 수다찬은 방심했다. 그를 끝까지 쫓아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수리요타이에게 “세상이 바뀌었으니 앞으로 우리에게 충성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수리요타이는 온화한 미소로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슴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복수하고야 말테다’

첫사랑의 힘으로…
수다찬은 자신과 스리텝의 아들이지만 백성들은 죽은 차이라차티랏의 핏줄로 알고 있는 ‘요드파’를 허수아비 왕으로 삼고, 2년 동안 자신들의 비밀을 알고 있거나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자들을 모두 제거한다. 마침내 궁중에 아첨꾼들만 남게 됐을 때, 스리텝은 아무 저항 없이 왕위에 올랐고 수다찬은 왕비가 됐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어서 차츰 백성들도 진실을 알게 됐다. 더구나 폭정을 일삼는 스리텝 왕조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수리요타이는 여기서 놀라운 결단을 내리게 된다. 전장에서 대장군으로 활약하고 있던 첫사랑 ‘피란토라뎁’에게 쿠데타군을 요청한 것이다. 온화하고 조용하기만 하던 수리요타이에게는 이런 놀라운 용기와 열정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피란토라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군사를 몰고 와 스리텝 왕조를 격파했다. 이로써 피신해 있던 남편 티엔라차가 대(大) 아요타야의 왕위에 올랐고 수리요타이는 왕비가 됐다. 애절했던 젊은 날의 사랑 피란토라뎁은 간단한 눈인사만 건넨 채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다.

구국의 왕비
그러나 이웃 버마의 ‘타빈슈웨티’ 왕은 아요타야의 혼란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십 수 년을 거듭한 내전과 권력다툼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요타야를 이 기회에 완전히 병합하고자 전군을 총출동시킨 것이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미얀마 군에 아요타야 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포루투갈의 대포로 무장한 미얀마군은 천하무적과 같았다. 이미 아요타야의 군사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뭔가 극적인 반전이 필요했다.

이때, 수리요타이가 갑옷을 입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여자가 전쟁터에 나가다니… 그것도 왕비가… 측근들 모두가 만류했지만 수리요타이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녀는 코끼리 등위에 올라타고 전투대형의 선두진영으로 내달렸다. 그곳에서는 남편 티엔라차가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버마군의 코끼리가 왕에게 돌진하는 것을 보고 수리요타이는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때 무시무시하게 큰 낫이 수리요타이의 허리를 유린했다.

왕비는 코끼리에서 떨어져 “끝까지 싸워 나라와 왕을 지키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아요타야 전사들은 왕비의 죽음을 떠올리며 결사항전으로 전쟁에 임했다.

마침내 버마의 타빈슈웨티 왕은 퇴각을 명한다. 아요타야를 점령한다 해도 이런 군사들을 상대로 했다간 자기 군대의 피해도 엄청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도 영웅인지라 수리요타이의 위대한 희생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리요타이의 열정과 희생은 아요타야의 평화를 200년간이나 연장했다.
남편 티엔라차는 그녀를 위해 수리요타이 불탑을 세우고 그곳에 아내를 안치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