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월드컵 정상…화려한 전성시대 서막…

‘무적함대’ 스페인이 사상 첫 월드컵 정상에 오르며 화려한 전성시대의 막을 열어젖혔다.
스페인은 12일(한국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서 펼쳐진 네덜란드와의 ‘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신승,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이로써 스페인은 13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 만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브라질(5회)과 이탈리아(4회), 독일(3회),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이상 2회), 잉글랜드, 프랑스(이상 1회)에 이어 여덟 번째 월드컵 우승국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에서 44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스페인은 역대 최고 성적이 4위(1950년 브라질 대회)에 불과했던 월드컵에서마저 정상을 밟으며 명실상부 세계최강의 축구강국으로 거듭났다.

사실 스페인은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우뚝 서기까지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메라리가를 보유하고도 국가대표팀은 강호들에 밀려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스페인은 뛰어난 개인기를 갖춘 선수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지만 늘 조직력이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까지 이어진 독재정권으로 인해 카탈루나와 바스크 등 지역주의가 만연해있었고, 이는 국가대표팀의 결속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이어졌다.

카탈루나의 대표 클럽 FC 바르셀로나와 바스크 지방의 아틀레틱 빌바오는 스페인 정권의 상징이기도 한 레알 마드리드에 맞서 치열한 맞대결을 펼쳤고, 이는 단순한 리그 경기가 아닌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대표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은 어느 출신의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느냐에 따라 스쿼드가 확연히 달라지기도 했는데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지역주의의 절정기를 맞았다.

당시 바스크 출신의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은 자신의 연고지 출신의 선수들을 대거 대표팀으로 발탁해 스페인 국민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한국과의 본선 첫 경기에서 경기 종료 막판 2골을 내주며 2-2로 비기자 클레멘테 감독을 향한 비난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결국 스페인은 이 대회 8강까지 오르는 선전을 펼치고도 귀국 후 거센 항의에 시달려야했다.

그러던 스페인에 단합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부터다. 당시 유로 2008 대회를 앞두고 주장으로 임명된 이케르 카시야스 골키퍼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출신에 상관없이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을 거쳐 오직 한 팀의 유니폼만을 입고 있는 선수가 화합의 메시지를 던지자 대표팀 동료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의 주장이자 ‘카탈루나의 심장’으로 불리던 카를로스 푸욜이 카시야스와 손을 잡고 선수단 단합에 앞장서자 바르셀로나 소속의 사비, 이니에스타, 피케 등의 선수들도 이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결국 하나로 뭉친 스페인 대표팀은 유로 2008과 월드컵 우승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특히 바스크 출신의 대표 선수였던 사비 알론소까지 팀 융화를 외쳤고, 조직력이 더욱 단단해진 스페인은 남미 축구의 개인기와 유럽 축구의 힘을 한데로 뭉친 ‘점유율 축구’의 진수를 선보이며 축구강국으로 급성장했다.

월드컵 우승이 확정되자 선수들은 일제히 그라운드에 쓰러져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눈물에는 선수 개인의 단순한 기쁨이 아닌, 고통을 간직한 스페인 축구의 애환이 서려있었다.

유로 2008 우승 당시 바르셀로나의 광장에는 카탈루냐 깃발 대신 스페인 국기가 펼쳐져있었다. 지역감정의 골이 축구로 통합되는 순간이었다. 하나가 된 스페인의 전성시대는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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