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ㆍ농촌이 전환기를 맞았다. 기초체력은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버거운 싸움을 치르려면 아직 몸만들기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기술력도 더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핵심 사안인 고령화 문제를 넘을 방도와 구조조정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매주 한 차례씩 31회에 걸쳐 연재한 연합뉴스의 <농촌현장>에 이어 농업 특집 2부 순서로 한국 농업이 안은 각종 현안을 정리하면서 해법을 모색하는 <농업진단> 기사를 15회에 걸쳐 매주 내보낸다.[편집자주]



■ 농업 쟁점 놓고 ‘끝장토론’ 해보자

개도국이었던 한국은 통일벼를 개발해 식량 위기를 극복하고 한고비를 넘겼지만, 한국 농업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벽을 앞에 두고 다시 위기를 맞았다. 전체적인 경제나 무역규모 등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농업의 미래는 아직 안갯속에 있다.

전문가들도 당장 대수술을 통해 농업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견해와 점차 우리 실정에 맞게 자체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는 신중론으로 나뉜다.

한국농업과 농촌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른 만큼 현안 해결방식이나 미래로 가기 위한 대안도 제각각이다.
그렇지만, 한국농업이 위기를 맞고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전환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국 농업에서 가장 첨예하면서도 시각차가 큰 분야는 무엇보다 농민과 농촌, 농지 구조조정과 이에 직접 연관되는 ‘소농’ 논란이다.
정부는 일관되게 규모화와 전업화, 농기업 활성화 등을 통한 구조개선을 추진해왔다.

일부 구조조정론자는 한국농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영농규모를 대폭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고령인구의 강제은퇴까지 거론한다. 현재 농가당 경지면적 1.5㏊의 배인 3㏊이상 농가가 전체의 3분의 2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앞으로 10년이면 농촌노인들의 상당수가 은퇴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고령농가의 빅뱅은 쉽게 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농업 경영주가 노령화돼도 영농 포기 시기를 최대한 늦춰 영농을 지속하려 할 뿐만 아니라 사망하는 경우 배우자가 영농을 승계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2004년 고령농가가 73만가구였는데 2019년이 돼도 60세 이상 고령농가는 여전히 56만 가구나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또 ‘소농’ 논쟁과 연결된다.
영세 소농들의 농지를 합쳐 기업농 규모로 해야 한다는 주장과 우리 농업과 농촌 특성상 소농을 강제로 정리하면 안 된다는 반박이 맞선다.

장기적으로야 규모화가 이뤄지는 방향으로 가겠지만, 현재 토지분산 상태로는 갑자기 합치는 것 자체가 독이 될 수 있고 비효율적이란 비판이 만만찮다.

여기다 벼와 보리, 콩 등 ‘토지이용형’ 농업은 영세 분산구조로 돼 있어 기업형 농업을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시설원예와 축산 등 ‘자본ㆍ기술 집약형’ 농업은 농지보다는 자본확대를 주원인으로 하는 만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 농업의 미래상으로 자주 소개되는 네덜란드가 과연 한국 농업의 모델이 될 수 있느냐는데 대한 최근의 논란도 주목할 만하다.

국토면적이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세계 제2의 농업 수출국으로 성장한 네덜란드를 두고 ‘한국도 제2의 네덜란드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며 그동안 농업 전문가 집단과 농민들이 줄줄이 벤치마킹에 나섰다.

그런데 GS&J 농정전략연구센터 고영곤 소장과 이정환 이사장은 ‘네덜란드 농업의 올바른 이해’란 보고서에서 “네덜란드 농업을 상징하는 농산물 수출액의 상당한 부분은 국내농업과 무관한 수입농산물의 재수출 또는 가공수출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고 소장 등은 이어 네덜란드 축산물과 화훼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데 이 역시 1500년께에 이미 낙농품을 수출하고 식량은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간척지 농업의 특수성과 오랜 무역업과 식품가공산업의 발전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역할에 관해, 농업생산이나 개별 농가의 선택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시장을 통한 경쟁과 선택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조가 바뀌고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농업구조를 단기간에 바꾸고자 시장에 개입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백년에서 수백년에 걸쳐 농업부분 구조조정이 진행됐거나 농식품 분야가 발전한 것을 두고 단기간에 이를 들여오거나 교과서로 삼겠다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이다.

또한, 농업의 역사와 여건, 특성 등이 모두 다른데 결과만을 보고 잘못 접근할 경우 시행착오만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한국농업은 어디로 가야 하나

농협 경제연구소가 낸 ‘농업ㆍ농촌의 올바른 이해’란 보고서를 보면 농업의 GDP기여도가 2.6%(2007년 기준)로 반도체ㆍ전자부품,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수출산업의 GDP기여도를 합친 것과 같다고 밝히고 있다.

외형이 크지 않고 일견 열악해 보이는 농업분야가 중간재 가격을 뺀 부가가치 개념으로 보면 주요 수출산업를 합친 것과 같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이다.

최근 무역의존도가 80%를 넘어선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상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농업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한 친농업 진영의 반박이기도 하다.

농촌진흥청은 농업이 가진 환경보전 기능의 경제적 가치만 무려 24조원(2002년)이라고 추계한 바 있다.

농업과 농촌은 이 밖에도 국토균형발전, 고용증진, 전통문화 계승을 비롯해 도시민들의 정서함양 기능에서부터 논밭의 홍수조절 기능까지 참으로 많고 다양하다. 농업과 농촌의 역할을 이렇게 애써 강조하지 않더라도 우리 농업을 포기하거나 버리고 가자는 주장을 하는 이는 없다.

다만, 세계 각국의 공통적인 농정목표이기도 한 식품안전과 환경 및 자연보호, 활력 있고 삶의 질을 확보한 농촌으로 가기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해 어떤 길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갈지 결정하는 일이 남았다. 한국 경제 성장과정에서 농촌은 제조업 발전을 위해 아들ㆍ딸들을 일꾼으로 내놨고 살점같은 땅도 공장부지로, 도로 부지로 내놨다.

농촌을 떠날 만큼 떠났고 논밭도 떼갈 만큼 떼갔다.
노인들만 휑하니 남은 농촌에 이젠,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 다시 찾아들고 있다.

이젠 농촌과 농업, 농민을 도시와 타 산업의 종속변수로 고려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농촌과 농업이 자체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길을 찾아야 할 때로 보인다.

정부도 농업 문제를 풀기 위해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기업의 범주에 식품산업과 생명산업을 포함하고 농촌에 경관과 환경의 이미지, 기능까지 추가해야 한다는 보고 있다.정부의 역할도 시장 개입, 설계자에서 시장기능 촉진자와 시장실패 보완자로 바꾸고 지원방식은 보조금 방식에서 산업의 가치창출 능력 지원으로 전환한다는 것.

그러나 농민단체들과 일부 전문가 집단은 여전히 정부의 시각에 심한 이견과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한국 농업의 장기비전을 모색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통상과 국내 농업을 어떻게 병행시킬 것인지, 구조조정 내용과 속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등등…

GS&J 인스티튜트 이정환 이사장은 이와 관련, “세계화의 물결 속에 한국 농업이 건전하게 생존하려면 정부와 농민, 농민단체 등이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부가 고령농가의 빅뱅을 포기하고 대외 개방 협상과정에서 농민들의 생활과 소득안정을 지원해주는 대신 농민들은 협상을 정부에 일임하고 자구적인 노력으로 소득증대에 전념한다는 ‘제3의 길’을 그는 제시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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