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세요

인간은 자연을 좋아하고 땀흘리는 일을 즐긴다, 오늘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고 내일은 조금 더 멀리 가기를 꿈꾼다. 그런 소망은 걷기,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 올차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동행없이 홀로 두 팔과 두 다리를 힘차게 놀려 움직이다 보면 빨라진 호흡과 피돌기 속에서 벅차게 느껴지는 무엇이 있다.

달리기는 ‘동물이 육상에서 다리를 이용해 움직이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정의된다. 양 다리를 교대로 앞으로 움직이며 언제나 적어도 한발은 땅에서 떨어진 상태로 있다. 인간은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붙이고 있을 때 안정감을 얻는다. 균형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균형과 안정의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권태와 아집이 도사리고 있다. 자연과의 교감을 잃고 스스로를 콘크리트 속에 가둔 인간의 팔다리 그리고 영혼은 서서히 퇴화한다. 날카로운 이빨도, 굳건한 날개도, 아가미나 지느러미도 없지만 그 모두를 뛰어넘는 강한 삶의 의지로 새로운 세계를 일구었던 자유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보고 읽고 달려보자
달리기를 주저하는 이에게 자연스러운 흥미와 따듯한 용기를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달리는’ 행동을 찾기보다 주인공이 얻었던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에 작은 동기가 되길 바란다.

천국의 아이들
(2001. 마지드 마지디)


테헤란 남쪽의 가난한 가정, 초등학생 알리는 여동생 자라의 하나뿐인 구두를 잃어버린 뒤 남은 운동화 한 켤레를 나눠 신게 된다. 그때부터 남매의 뜀박질이 시작된다.
오전반인 자라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오면, 알리는 그 운동화를 신고 전력 질주해 오후반 수업을 가는 것. 한 켤레의 신을 나눠 신느라 숨이 턱까지 닿도록 달리는 남매. 어느날, 전국 어린이 마라톤 대회의 3등 상품이 운동화라는 사실을 알고 대회에 참가하지만, 결국 1등을 해버리고 만다.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는 아마도 러너스 하이(nunner’s high, 오랜 시간 달릴 때 경험하는 황홀경)에 빠져버렸던 게 아닐까.
가쁘게 차오르던 숨이 잦아들고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이대로 죽을 때까지 달려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기는 이 경험은 겪어 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2006. 호소다 마모루)


여느 사람처럼 마코토의 일상도 정신없는 등굣길로 시작해 오후엔 친구들과 야구를 즐기고 공원의 석양을 뒤로하며 하루를 보낸다. 이 영화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애니메이션으로, 반복된 생활 속에서 미래의 꿈을 잃어버린(혹은 잊었거나) 이들에게 ‘그날’을 향해 열심히 달리라는 말을 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 ‘타임리프’를 통해 그저 지나쳤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된 마코토는 진심으로 원하는 곳을 향해 달리게 된다. 열심히 달리면 그곳에 닿을 것 같은 희망. 숨쉬는 일분일초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타임리프의 숫자가 0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달리자. 최선을 다해. Time waits for no one

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문학동네)


어리지도 않지만 철이 든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 ‘소년’. 소설가 은희경은 5년만에 펴낸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를 통해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마음속에 소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일곱 살 소년과 소녀, 그리고 그 시절을 겪어낸 어른들의 채워지지 않은 갈증과 불안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힙합’과 ‘달리기’라는 소재는 이 소설을 소년의 나이처럼 맑고 경쾌하게 한다.

달리기는 자신의 몸과 사투를 벌이는 하나의 수단이며, 힙합과 함께 소년의 ‘무기“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5년전부터 작가 은희경 역시 직접 달리기를 했다고. 하프마라톤을 하기도 했고, 어느 대회에 나가 3등을 한 적도 있을 만큼 스스로 달리기를 할 때 그 느낌들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하니,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힙합을 들으며 달리고 싶어질 것만 같다. 달리기는 승부도 아니고 성취도 아니야. 펀런이란게 있어. 즐기는 게 최고의 기술이라고 보면 돼. 즐기는 놈은 아무도 못이겨. 알지?(본문중에서)

달리기와 존재하기
(조지 쉬언. 한문화)


‘달리기 철학의 바이블’로 통하는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쓴 조지 쉬언은 미국의 심장병 전문의이자 작가로 마흔 네 살의 나이에 ‘더 이상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의사를 그만두고 달리기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에 몰입한 그는 쉰 살 무렵 ‘50대 1마일 달리기’ 대회에서 4분 47초로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

1978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14주동안 오른 바 있는 이 책은 쉬언이 경험한 연습방법, 부상방지 요령, 달리기 전략 등의 실제적인 정보가 들어있다. 하지만 더 큰 의미는 새로운 몸과 삶을 발견한 저자가 말하는 ‘삶이라는 위대한 경기’를 즐기는 방법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또한 달리는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했다는 것만으로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다. 지난40여 년동안 나는 살 가치도 없고 불완전하며 열등한 존재라고 느끼면서 살아왔다. <중략> 그러다가 달리기를 발견했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달릴때면 다른 사람의 평가가 두렵지 않았다. 나는 다른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 볼 수 있게 됐다.(본문중에서)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동양인 최초의 세계적 작가라 불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요작품<1Q84>,<해변의 카프카><상실의 시대>등은 40여개 국어로 번역되고 있다. 이런 그가 서른세 살, 전업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그때부터 매일 달리기를 하는 ‘달리기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달리기를 말할 때...>는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에 대한 하루키 최초의 ‘회고록’이다.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하루키 특유의 문장력과 흡인력 강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도 한번 달려볼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흥미가 있다면, 그냥 놔둬도 그 사람은 언젠가 스스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아무리 권해도 허사일 것’이기에 달리기를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의 문장을 읽고 나면 학창시절 이후 해본 적 없는 달리기가 새삼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찰스 강가를 1시간쯤 달리면, 마치 양동이로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입고 있는 모든 것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린다. 햇볕에 탄 살갗이 따끔거린다. 머리가 멍해진다. 정리된 생각은 어느 한 가지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참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몸의 중심에서 모든 걸 깡그리 쥐어짜내 버린 것 같은, 어쩌면 모든 걸 다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에 우러난다.(본문중에서)

자 어떤가…춥더라도 한번 밖으로 나가 신으로부터 받은 이 축복받은 초능력을 한번 발휘해볼 생각이 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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