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를 찾기 어려운 전 품목 관세철폐로 농업·농촌의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5일 공개된 한미FTA 농업관련부문 협정문에 실린 감귤의 계절관세, 농산물특별긴급수입제한(ASG), 위생검역(SPS),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 등의 협상결과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감귤=협상결과에 따르면 오렌지는 성출하기(9월~2월)에는 현행관세 50%를 유지하고 비출하기(3월~8월)에는 관세 30%에서 시작해 7년 후 철폐키로 했다. TRQ 물량 2천500톤(매년 3% 증량)은 계절에 상관없이 들여오도록 했으며 냉동 오렌지 주스는 54%의 관세를 즉시 철폐키로 했다.

감귤은 제주 농산물 생산액의 53%, 지역경제의 약 30%를 차지하는 주요산업이다. 이번 협상에서 정부는 계절관세로 감귤을 보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주도의 입장은 다르다. 제주대 고성보 교수는 “감귤의 주 생산시기와 계절관세 기간의 불일치로 월동온주, 한라봉 등 전체 생산액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만감류에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며 “농축액 관세 54% 즉시 철폐로 감귤 가공산업도 심각한 위기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쇠고기=쇠고기와 육우에 부과되던 40%의 관세를 15년 후에 철폐키로 했다. ASG(농산물긴급수입제한)도 쇠고기 관세철폐 기간 중에만 적용키로 했다.

농대위는 현실적으로 쇠고기의 ASG는 발동 가능성이 없다고 분석했다. 1년차 수입물량 27만톤을 기준으로 매년 6천톤씩 증량해 15년차에 35만4천톤이 되어야만 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쇠고기 소비량은 30만톤 수준이다. 지난 2003년 뼈있는 갈비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량은 19만9천톤 수준으로 ASG 발동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중앙대 윤석원 교수는 “국내 쇠고기 소비량이 30만톤 정도인데 ASG 1년차 발동기준이 27만톤”이라며 “기준물량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나마 관세가 철폐되면 ASG는 발동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돼지고기=냉장육(삼겹살, 갈비, 목살 등)에 대해서 10년 철폐 및 ASG를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국내 수입량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냉동육에 대해서는 2014년 1월 1일까지 철폐키로 했다.

한국산 대비 미국산 삼겹살의 가격은 1kg당 32% 수준에 불과하다. 목살의 경우 38% 수준으로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미국산 쇠고기보다도 비싼 우리나라 돼지고기는 대체관계에 의한 피해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세가 완전 철폐될 경우 수입육의 가격하락이 한국산 돼지고기 가격까지 동반하락 시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점을 인정하고 있다. 농림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농업관련분야 평가에 대한 정부입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본격화 될 경우 돼지고기 소비가 미국산 쇠고기로 대체되어 가격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낙농산업=탈지분유와 전지분유의 현행 관세 176%를 유지키로 했다. 대신 무관세 쿼터량 5천톤(원유 환산시 15만톤)을 허용했다. 이는 국내생산량의 7%, 수입량의 17%에 달하는 수준으로 매년 3%씩 복리로 늘려야 한다. 국내 우유수급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혼합분유(36%)와 버터(89%)의 관세가 10년 후 철폐된다.
농대위는 협상결과 분석에서 “신선한 우유를 제공해야 되는 유제품의 대체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아무리 관세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FTA라 하더라도 상당한 유제품을 예외품목으로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주장했다.

◆긴급수입제한(SG)=닭고기와 기타육류(오리고기, 산양, 면양, 칠면조고기, 녹용 등), 낙농제품(분유, 연유, 유당, 치즈, 밀크, 크림, 버터, 유장, 꿀, 사료품목 등), 과일·채소류(오렌지, 감귤류, 딸기, 토마토, 오이 등) 등은 1회에 한해서만 SG를 발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심각한 독소조항으로 평가되고 있다.

◆농산물특별긴급수입제한(ASG)=쇠고기, 돼지고기, 사과, 가공용 옥수수, 설탕 등 30개 품목만 지정됐다. 하지만, 이들 품목들도 관세철폐 기간이 종료되면 발동할 수 없게 된다. 일부 품목의 경우 2~3년간 지속되지만 결국은 ASG를 발동할 수 없게 된다.

돼지고기의 경우 현재 수입물량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냉동육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상에 포함된 냉장육의 경우 2004년 2.21%에서 2005년 3.67%, 2006년 4.80%로 수입량이 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ASG의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윤석원 교수는 “평균 8톤 정도가 수입되는 고추의 SG 발동을 위해선 수입물량의 100배가 넘는 827톤을 넘어야 하고, 양파도 현재 수입량의 6배 가량이 늘어나야 발동 가능하다”며 “사과는 현재 수입물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첫해 발동 기준물량이 9천톤”이라며 비현실적 SG 기준을 꼬집었다.

◆위생검역(SPS)=협정문의 주요 내용으로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규제완화 양해서’와 ‘동물건강 및 축산물 위생조치에 관한 양해서’를 통해 조류독감 지역화 조건과 육류검사 시스템의 동등성을 인정했다. 또 SPS 상설위원회 설치를 합의했고, 원산지 분과에서는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원산지 기준을 도축국 기준으로 정했다.

협정문을 분석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편집국장은 “국민건강과 식품안전을 지키기 위한 위생검역 원칙을 미리 설정해놓지 않은 채 협상이 개시됐다”며 “사전예방의 원칙을 위생검역의 원칙으로 삼았다면 광우병 쇠고기, 유전자조작유기체(GMO), 조류독감 지역화, 식육검사 시스템의 동등성 등 위생검역 현안에 대해 현재와 다른 방식으로 대처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협상결과에 대해서는 “SPS 상설위원회의 설치 합의로 미국 측이 위생검역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통상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됐다”며 “원산지 분과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원산지 기준으로 양보한 것은 위생검역 분과의 원산지 기준과 모순되고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농업 관련 산업 개방=육류도매업과 육우사육업에 대한 미국자본의 진출 가능성이 확대됐다. 육류도매업은 축산물종합처리장(LPC), 도축장, 도매업소, 도매배송업 등을 의미한다.

미국의 농업분야 주요 관심 사안은 쇠고기 등 육류 수출에 있다. 육류도매업은 애초에 유보항목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협상 막판에 지분참여를 허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육류도매업에 미국의 거대유통 자본이 들어올 경우 수입 축산물을 취급함은 물론 국내산 축산물도 취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농산물 덤핑 수출=공개된 협정문 제10장(무역구제) 제2절(반덤핑 및 상계관세)에는 ‘제3항과 제4항(통보 및 협의)을 제외하고는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반덤핑 및 상계관세조치에 대해 당사국에 어떠한 권리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미국산 농산물의 덤핑 공세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림부의 해명자료에서는 농산물 덤핑과 관련된 내용이 빠져있다. 미국의 농업통산정책연구소(IATP)의 2005년 보고서는 ‘쌀의 경우 2003년도 수출원가가 100파운드당 18.43달러였지만, 수출가격은 13.68달러였다. 이는 26%의 덤핑률로 수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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