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없는 연구개발’ 세계음식 반열 오르는 지름길

▲ 호박차 관능검사-지난 7일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의 연구원들이 국내산 단호박을 이용해 만든 호박차를 맛보며 향, 맛, 색, 입안의 질감을 강도와 기호도로 나눠 꼼꼼히 평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한식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관능검사실에서 흥미로운 조사가 진행됐다.
농촌진흥청의 초청으로 모인 현지인 83명이 가장 맛있다고 느껴지는 ‘쌀밥’과 비빔밥에 들어간 ‘익힌 채소‘를 골라본 것이다.

쌀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단립종인 탑라이스와 하이아미, 중립종인 미국산 칼로스와 프랑스산 바스마티 등 총 4종을 제공했는데 프랑스인 대부분은 바스마티가 가장 맛있다고 손을 들었다.

바스마티는 인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쌀로 국내에서 재배되는 쌀과 달리 길쭉한 모양에 끈기가 없고 딱딱한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시기에 시행한 같은 실험에서 중국, 한국, 일본인들은 찰기가 강한 탑라이스를 가장 선호한 것과 뚜렷한 차이가 났다. 프랑스인은 비빔밥에 들어가는 시금치에 대해서도 다른 선호도를 보였다.

한국인은 20초간 살짝 데친 시금치를 좋아했지만, 프랑스인은 5분간 푹 삶은 시금치를 좋아했다.
푹 익힌 시금치를 스파게티 등에 넣어 먹는 프랑스인에게 씹는 맛이 거친 시금치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프랑스에서 비빔밥을 팔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조사결과는 흥미롭다.
당근, 호박, 숙주, 버섯 등 나물은 국내에서와 비슷하게 조리하되 시금치는 조금 더 삶고 쌀은 바스마티를 쓸 때 프랑스 입맛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된다.


지속 가능한 한식세계화..R&D가 기본

한식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구개발(R&D)이다.
국립농업과학원 김행란 전통한식과 과장은 “한식을 상품으로 외국에 내보낸다는 것은 아주 종합적인 사업”이라며 “여러 나라의 식문화와 기호도에 대한 정보수집과 연구개발이 없이 식품만 내보내면 결코 세계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세계 소비자의 입맛은 어떤지, 그들이 선호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한식의 우수성과 기능성은 어떤 것인지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진출을 꾀한다면 도시의 기후적 특성, 인구특징, 경제 현황 등 전반적인 상황에서부터 패스트푸드점의 영향력, 소비 지출 중 외식 비중, 1인당 식당 이용 비율, 쿠폰 등 프로모션 이용 빈도, 차 안에서 먹는 아침식사 횟수, 건강식에 대한 관심도, 지역별 한식당 수 등 외식산업의 현황이 모두 고려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개인이 이런 연구를 해내기는 쉽지 않다. 연구를 정책적으로 풀어야 하는 이유다.
김 과장은 “큰 기업은 자체적으로 R&D를 하고 있지만 해외 소규모 한식당과 해외진출을 꾀하는 사업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준비하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기관의 R&D는 그 성과를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지 연구를 바탕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한식 메뉴를 선정, 개발하는 작업도 R&D의 중요한 축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 2009년 베트남에서 19개 한식 단품요리로 실험한 결과, 비빔밥, 김밥, 구절판, 김치전, 불고기 전골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여기에다 베트남인의 기호를 고려한다면 비빔밥에는 초절임한 오이·당근과 숙주를 이용하고, 김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배려해 김을 밥 안쪽으로 넣어 보이지 않게 하고 셀러리, 당근 등 아삭한 채소를 이용하면 좋다는 결론도 도출했다.

이와 더불어 식재료나 음식을 표준화하고, 이들 정보를 한식세계화 추진에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전 과정도 R&D의 영역이다.

우리나라는 매운맛을 대표하는 나라임에도 고춧가루 매운맛 등급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이는 세계화의 관건인 맛의 표준화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GHU(Gochujang Hot taste Unit)’을 표준단위로 해서 고춧가루를 순한 맛에서 매우 매운 맛까지 5단계로 구분해 현재 제도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는 ‘맵기’가 음식점마다 천차만별이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앞으로 고추 관련 식품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받았다.

꾸준한 연구가 세계화 지름길

입맛은 보수적이라서 정책이나 연구를 통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에도 일본은 일식 세계화에 무려 50년이 걸렸고, 태국 음식도 10년이 넘어서야 세계음식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음식의 이런 특성 때문에 한식 세계화 R&D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중단없는 연구개발’을 꼽았다.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김용한 부원장은 “한식 R&D는 이제 2년의 역사를 가진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며 “10년 이상 정책적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한식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장에 다가서지도 못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한식의 어떤 부분을 산업화하는 것이 경쟁력이 있는지, 어떤 연구가 실제 필요하지 등 전반적인 검토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부원장은 “최근 밥 상품화 연구를 진행했는데 뜻밖에 시장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때야말로 R&D를 통해 시장을 계속 찾고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부적으로는 한식이 건강을 유지하는 음식이라는 점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과학적 우수성을 강조하는 작업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김정은 교수는 “한식은 영양학적, 과학적으로 우수하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세계적으로 건강식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는 이때 한식의 우수성을 규명해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식세계화의 주무부서인 농수산식품부 박순연 외식산업진흥팀장은 “한식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중장기적인 R&D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며 “한식 수요 고객을 확대하고, 해외 한식당 경영주, 조리사가 활용 가능한 사업을 다각도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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