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의 협정문 공개이후 각계 전문가들의 분석 자료가 하나 둘 발표되면서 숨겨져 있던 위해조항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분야의 피해분석과 함께 고령 농업인이 많은 농촌현실상 위생검역이나 보건의료분야의 협상내용도 반드시 되집어 봐야 할 사안이다.

특히 보건의료제도의 전면 후퇴를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보건의료 분야와 쇠고기 검역 및 조류독감 지역화 등의 심각성이 지적되는 위생검역 및 식품안전 분야를 집어본다.



미국의 뜻대로, ‘위생검역’ 협상
식품위생 및 광우병 안전연대의 통합협정문 분석에 따르면 위생검역분과 협정문과 관련된 8개의 세부 쟁점 중에서 목적, 적용범위, 정기적 기술회의 개최여부, 위원회 설치여부 등 6개는 미국의 요구가 그대로 관철됐다.

안전연대는 한미FTA 협상에서 위생검역협상 만큼 관계가 불확실한 협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위생검역 협상에서 쇠고기 문제를 관철했다. 한국 정부는 광우병 쇠고기는 협상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쇠고기 문제를 빅딜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 안전연대는 “광우병위험 쇠고기 수입을 4대선결조건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며 “국민건강에 직결되는 위생검역시스템을 거래대상으로 삼은 위생검역협상은 애초부터 퍼주기 협상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철새는 주 경계가 없다
정부는 협상 막바지에 미국이 요구한 조류독감(AI) 지역화 개념을 적용키로 하는 양해서를 작성했다.
양해서에는 한국정부는 미국산 가금 및 가금육제품의 수입과 관련,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하여 미국에 대해서 지역화를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수입위험평가를 개시할 것이다. 위험평가 절차를 촉진하기 위하여 한국정부는 2007년 4월에 설문서를 미 농업부(USDA) 농식물검역청(APHIS)에 제시할 것이다. USDA APHIS는 가능한 조속히 관련 정보와 문서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작성되어 있다.

조류독감 지역화 개념은 예를 들어 미국 텍사스 주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을 경우, 텍사스를 제외한 다른 주의 닭고기는 모두 수입하라는 것이다. 마치 미국 철새는 주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국민건강이 무역장벽 제거를 위해 희생된 것이다.
한편 세계보건기구와 한미 양국정부는 조류독감의 원인이 철새라는 점을 인정해 왔다.

농업인의 공공적 재해보상 ‘불가능’
지난 4일 노동건강연대는 한미FTA 협정문 분석에서 “농업인의 공공적 재해보상 제도가 불가능해 졌다”라고 주장했다. 협정문에 농업인의 직업 관련 재해 보상을 위해 준 사회보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농협의 ‘농업인 재해공제보험’이 완전 민영화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농업인 재해공제보험’은 농림부가 재정의 일부를 부담하고 농협이 운영하는 사회보험적 성격을 일부 가진 민간보험이라 할 수 있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한미FTA 협정문 부속서 13-나의 제6절 1항에는 ‘분야별 협동조합이 제공하는 보험서비스에 관한 규정은 그 협동조합에게 동종 보험서비스의 민간 공급자보다 경쟁상의 혜택을 주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농협이 운영하는 보험에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지금은 정부 보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보험료를 적게 내고도 보험료 대비 보상 수준이 높다. 하지만 정부 보조가 없어지면 보험료는 오르게 되고, 오른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는 농업인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현재 농업인 재해공제는 보험료 대비 급여 수준이 그리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정부 보조가 있었기에 아쉬운 대로 이용하려는 농업인이 있었지만 이제 그나마도 없어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농업인의 직업관련 재해 보상을 위한 독자적인 사회보험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마저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에 의해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의료보험의 ‘폭리’ 방치
국민의 50% 이상이 가입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은 2005년에 그 규모가 8~11조원에 이르러 건강보험재정의 4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재 일부 민간보험사들은 고령자와 질병위험이 높은 사람은 아예 보험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민간의료보험의 보험료 대비 혜택비율(지급률)이 80%대인데 반해 한국은 60%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서비스 협정은 1년 내에 민간보험상품의 출시를 네거티브리스트로 바꾸는 것을 명시했다. 또 신보험상품에 대해서는 기존의 신고제조차 운영하지 않기로 함으로서 어떠한 상품의 출시도 막을 수 없게 됐다. 보험상품의 자유로운 출시는 심지어 공적건강보험과 경쟁하는 상품까지 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민간보험상품이 공적건강보험을 위축시키고 사회적 규제 없이 폭리를 취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민간보험상품이 중산층 이상의 돈있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출시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사회 취약계층이 소외되는 의료보험 양극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건강보험의 1국 2의료체계
협정문 공개로 정부가 건강보험제도 자체를 협상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는 기존에 건강보험은 협상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협정문 24장 부속서Ⅱ에는 한국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인천, 부산, 광양의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 전역을 개방대상으로 함을 명시했다. 인천에는 이미 미국 뉴욕장로교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합작으로 건강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병원을 건립중이다. 따라서 국내진료비의 5~7배 수준의 영리병원이 세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병원 병실은 모두 1인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원할 경우 국내병원 진료비의 10~20배 정도를 내야한다는 결론이다.

한국 보건의료제도의 가장 중요한 규정인 의료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와 의료기관 비영리법인 규정은 이미 4지역의 경제자유구역에서 무너졌다. 정부는 앞으로 두 곳을 추가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좁은 국토에서 6지역이 건강보험과 비영리법인 예외가 된다. 한미FTA의 역진방지조항에 의하며 이 조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되돌릴 수가 없다.

국민건강과 보건의료 ‘적신호’
한미FTA 보건의료대책위는 의약품협상에 대해 “건강보험재정의 30%를 차지하는 의약품과 관련한 보험제도를 송두리째 미국과 다국적 제약사에게 넘겨줬다”고 평가했다.
의약품협상에 대해 미국의 다국적제약회사협회는 협정타결 직후인 4월 3일 “지적재산권을 강화하고 특허약 가치를 인정하는 협정”이라며 환영성명을 밝혔다.

협정문에 따르면 모든 급여평가위원회가 이해당사자인 다국적 제약사에게 공개되어야 하고, 의약품/의료기기의 가격과 보험적용 결정과정에 하나하나 제약사들이 참여하게 된다. 또 미국정부와 한국정부가 의약품/의료기기 위원회를 상시화하고 모든 관련 정책을 논의하며 작업반을 가동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대책위는 “보건복지부의 의약품 정책은 한미양국의 위원회 결정을 받아야만 시행되는 의약품 주권의 상실”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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