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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식물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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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등록일
2010-08-02 17:31:03
조회수
6024
모든 생명체는 일생을 통하여 수많은 시련을 맞이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부터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은 다양한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작은 풀을 먹고 자라는 초식 동물은 이들보다 덩치가 크고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지닌 육식 동물의 먹이가 된다. 이들은 육식 동물 뿐 아니라 티끌보다도 작은 미생물의 공격에도 노출되어 있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질병들은 미세한 미생물의 공격에 의한 결과이다. 다행히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위협을 감지하고 위험한 순간과 그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게는 모기에 물린 가려운 부분을 긁는 것부터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나기 전에 동물의 대이동도 역시 자기방어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선천성 면역과 환경에 적응하면서 얻는 후천성 면역으로 나뉜다. 피부와 점액조직, 위산, 백혈구 등이 선천성면역에 속하고 후천성면역은 일반적으로 일컫는 면역계를 말하며 B림프구와 T림프구가 맡고 있다. B림프구에서 생산한 항체는 혈액을 따라 온몸을 돌면서 병원체인 항원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T림프구는 항체의 생산 없이 직접 항원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B림프구를 활성화하는 일도 담당한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병원균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할까? 불행하게도 식물에게는 동물처럼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발이 없다. 이 때문에 그들만의 방어기작을 구축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우선 동물의 선천성면역에 해당하는 식물의 방어체계는 일반적으로 물리적, 화학적 방어기작이 해당한다. 큐티클층(왁스로 이루어진 외부층)과 주피(2차 보호조직)는 수분손실을 지연시키며 세균과 균류의 침입을 막는다. 또한 2차 대사산물로 알려진 식물화합물군은 다양한 초식동물과 병원성미생물로부터 식물을 지켜준다. 식물의 표면을 보호해주는 큐틴, 수베린, 왁스라는 세 화합물은 식물과 환경사이에서 수분을 유지하고 병원체를 퇴치하는 장벽을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 털, 톱날모양, 칼날모양의 잎을 만들거나 역겨운 냄새를 풍기기도 하며 미모사처럼 잎을 건드리면 접어버리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식물의 유도방어기작(Induced Defense)은 많은 부분에서 동물의 후천성면역과 유사한 성격을 보인다. 면역체계가 병원균을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어릴 때 맞은 예방주사는 평생 동안 그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증명해준다.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식물도 보유하고 있다. 다단계로 이루어진 이 시스템은 병원성 미생물에 의해 감염된 자리에 세포괴사(Cell Death)를 일으킨다. 감염부위에서 세포괴사가 일어나면 신호전달물질들이 식물전체에 외부침입을 알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식물체를 보호한다. 이 방법은 감염부위를 희생하면서 전체를 방어하는 지혜로운 자기방어방법이다. 동물에서와 다른 점은, 특화된 특정기관에 의해서 자기방어가 일어나는 동물과 달리 식물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모든 세포가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세포가 병원균들의 공격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고착생활을 하며 오랜 기간 수많은 병원균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생존하면서 그들이 터득한 노하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에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들은 지구온난화, 지구사막화, 저탄소 녹색성장 등과 같은 달갑지 않는 용어들뿐이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다소비 체제’가 지속될 경우 지구촌이 치러야 할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매년 세계 GDP의 5~20%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류를 먹여 살릴 세계의 식량창고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의 공격으로 잃는 비극적인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해야하고 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속도를 늦추며 충분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오랜 기간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길러온 식물의 자기방어기작을 연구하여 보다 강한 작물을 만들어 대비하는 그 중심에 농업생명공학이 자리 잡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신작물개발과 김민갑
작성일:2010-08-02 17:31:03 152.99.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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