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태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 소장

우리 농업·농촌은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인해 농업의 입지가 약화 되고, 이어 전개된 세계화, 개방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늘 창의적 역량을 발휘해 왔다. 


인구 천만의 세계도시 서울이지만 서울시 안에는 농업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지역들이 있다. 먼저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선농단부터 살펴보자. 선농단은 조선시대 왕이 매 이른 봄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며 직접 밭 갈고 씨 뿌리기를 한 곳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중농의 의지를 백성들과 함께 제사의식을 통해 보여주었던 장소로써 6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은 지금도 매년 도시농업을 하는 시민단체 등에서 시농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대한제국 시절인 1900년 근대농업의 시작을 알리는 필동의 잠업시험장, 1906년 뚝섬의 원예모범장도 서울이 우리나라 농업을 선도하는 도시였음을 엿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뚝섬의 원예모범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농사시험장, 원예시험장의 역할을 하며 1960년대 본격적인 도시개발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예단지로써 백색혁명의 시작이자 근교 원예농업의 한 전형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다. 


그밖에도 서울 농업의 번성기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들을 지역명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먼저 종로구 부암동의 사과재배 단지였던 서울능금마을, 마포구 도화동의 복숭아 재배단지였던 복사골, 용산구 집단 배 재배 단지에서 유래한 이태원, 동작구의 배 재단지에서 유래한 이수교와 중랑구 묵동의 먹골배, 뽕나무와 잠업으로 유명했던 잠실, 아직도 채소 품종명으로 남아있는 뚝섬적축면 상추 등 많은 예들이 있다. 


서울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급격하게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며 농업인구와 경지면적의 수직적 감소를 경험해왔으며 농업은 그야말로 ‘사양산업’ 취급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19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 울림픽’이라는 주요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원예산업 분야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성장이 일어나게 됐고 이후 1992년 우리나라 최초의 ‘주말농장’이 서초구에 개설되면서 생산 일색의 농업에서 ‘생산과 여가생활을 함께 누리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농업’이 바로 서울에서 시작됐다. 


서울시의 도시농업은 농업의 생산 이외의 기능 즉 생물 다양성의 유지, 홍수 예방 기능, 경관의 제공 등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인식의 증가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고조에 따라 농업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관점을 촉발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의 광역시를 중심으로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10여 년간 서울시는 도시농업 활성화 벤치마킹의 대상지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제 2021년, 서울의 도시농업은 또 다른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고도의 도시화와 고령화, 자동화, 1인 가구의 증가, 고독이 개인이 아닌 사회적 이슈가 된 현대 사회에 농업은 치유의 중요한 매개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농업기술센터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치유농업센터 구축과 정서곤충사업의 확대, 스마트농업 체계 구축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기관 혁신안을 지난해 수립해 올해부터 역점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은 이제 농업을 통한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농업자원의 풍부한 가능성들을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로 담아 시민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새로운 농업 부흥의 시대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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